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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노인은 봉”...탈법 상술 활개치는 출장 국가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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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노인은 봉”...탈법 상술 활개치는 출장 국가검진

입력
2014.12.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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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ㆍ전통시장서 전화번호 입수

"국가검진 받으셨나요" 호객 행위

농한기 1, 2월 연례행사 성행

관리 책임 건보공단선 팔짱만

전국 읍ㆍ면ㆍ리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출장 국가건강검진이 일부 검진기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건강검진사업을 맡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기초해 보험료 경감 등을 위해 출장검진기관을 지정, 읍ㆍ면ㆍ리 지역에 검진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출장검진기관들은 국가건강검진이란 명분을 내세워 이들 지역 노인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문제의 출장검진기관들은 지역 노인회관, 경로당, 전통시장 등에서 확보한 전화번호부를 이용해 노인들에게 국가건강검진을 받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또 과거 병원에서 진료 받았거나 건강검진센터를 이용한 이들에게도 국가건강검진을 받을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기관에 축적된 개인정보 등 자료를 출장검진 영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광역시 소재 S의료재단 병원의 관계자는 “과거에 병원에서 건강검진 받은 이들의 명단과 지역 전화번호부를 통해 검진자를 모집하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처럼 전화만 하면 하루에 100명 이상 검진을 받던 호경기는 지났지만, 1주에 평균 40~70명 정도 검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또 “1,2월에는 지역 내 병원 10군데 정도가 출장 국가건강검진을 진행한다”며 “과거에는 국가건강검진과 함께 별도로 종합검진을 했는데 적발되면 3개월 영업정지를 맞아 이런 영업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의 주장과 달리 개인정보를 활용해 검진자를 모집하는 행위는 아무리 국가건강검진이라 해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외 개인정보 수집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개인정보를 수집토록 명시돼 있다. 건보공단은 “국가건강검진을 대상으로 할 때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득한 정보를 사업목적으로 활용하면 불법”이라고 밝혔다. 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출장검진기관들이 지역 노인회관, 경로당, 읍ㆍ면ㆍ리 상가용 전화번호를 이용해 노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록이 남기 때문에 휴대폰이 아닌 일반전화로만 영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교묘히 법망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서 하는 일” 핑계 계절특수 누려

출장검진기관들이 이처럼 노인대상 출장국가건강검진에 열 올리는 이유는 뭘까. 출장검진기관 관계자들은 “비수기인 1,2월에 출장검진버스를 이용해 손쉽게 검진사업을 할 수 있고, 도시민들과 달리 지역 노인들은 국가에서 하는 것이라고 하면 두말없이 참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평소 몸이 좋지 않은 노인들의 경우 병원에 가면 일반 건강검진이 아닌 종합검진을 받으라고 할까 두려워하는 심리를 이용해 출장건강검진을 종용하는 것 같은데, 진짜 이유는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일반건강검진의 경우 공단에서 출장검진기관에 지급하는 1인당 평균 지급비는 3만5,413원이다. 출장검진기관이 하루 평균 70명 정도 검진하면 1주일 동안 약 1,487만원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 1,2월 새 매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꼬박 출장검진을 한다면 설날연휴를 제외하더라도 제법 큰돈을 만질 수 있다. 출장검진기관의 한 관계자는 “3월부터는 농사 준비로 어르신들이 바쁘기 때문에 아무리 전화를 해도 검사에 응하지 않아 농한기인 1,2월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출장검진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1,2월 동안 400대가 넘는 출장검진버스가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출장검진기관에 있어 1,2월은 그야말로 성수기인 셈이다.

노후 장비로 5분만에 “검진 끝”

출장검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실한 검진서비스이다. 아무리 일반건강검진이라 해도 검진서비스 자체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출장검진은 오전 8시에서 시작해 11시에 종료된다. 검진시간이 짧다 보니 1인당 검진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출장검진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한 운전기사는 “신원조회 후 혈압을 재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면 모든 검진이 끝나는데 아무리 출장검진이라 해도 너무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최근 출장국가건강검진을 받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의 한 주민은 “국가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해서 아침 8시에 나왔는데 5분 만에 검진이 끝났다”며 “나중에 검사결과를 보내준다고 하는데 이렇게 검사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출장검진차량에 탑재된 의료장비 문제도 심각하다. 익명의 출장검진기사는 “장시간 운행으로 의료장비 안전에도 문제가 있고 노후화된 의료장비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20년이 넘은 엑스레이 장비도 있다”고 했다. 모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방사선사는 이와 관련, “노후화된 엑스레이 장비로 촬영 하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를 얻기 힘들다”며 “2만 건 이상 엑스레이 촬영을 하면 엑스레이를 방출하는 튜브 자체가 손상되는데 이런 부분을 점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출장검진버스에 탑재되는 방사선촬영장치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른 검사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판정 받은 장비가 사용되는데 검사기준만 통과하면 사용연한이 오래돼도 사용할 수 있다”며 “의료장비와 관련 구체적인 법률도 없어 공단차원에서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대학병원급에서 사용하다 폐기 처분한 엑스레이장비를 보수해 출장검진에 이용하는 병ㆍ의원도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출장검진으로 인한 노인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경기도 지역의 한 노인은 “1,2월만 되면 집으로 국가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전화 때문에 피곤하다”며 “우리 동네 한 노인은 국가건강검진이라고 해서 나갔다가 ‘지난해 검진 받았으니 해당사항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낭패를 봤다”고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당국의 관리 의지는 미약하기만 하다. 건보공단 측은 출장검진에 대한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1~2월 농어촌 지역에서 출장검진이 빈번하므로 공단에서는 적정한 검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출장검진기관 수시점검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라고 원론적 답변만 했다. 탈법적 상술이 판치는 출장 국가검진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뚜렷한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출장검진기관 수가 전국적으로 733개에 달해 정부 당국이 감시의 눈을 부릅뜨더라도 관리가 벅찰 법한데도 말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하루 3시간 일하고 월 550만원" 알바 문진의사 모집

“할아버지, 할머니 대상으로 아주 간단한 상담만 하면 돼요. 직원들이 자리를 만들면 거기 앉아 혈압만 재고 당뇨병이 있다고 하면 ‘당뇨관리 잘 하세요’라고 말만 하면 돼요. 하루 3시간 일하고, 공휴일도 일한 것으로 계산해 한 달에 550만원 가져가실 수 있어요.”

출장검진 문진의사 모집 중인 한 지역병원 인사 관계자의 말이다. 출장검진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1,2월에 출장검진 문진의사로 손쉽게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의사들도 증가하고 있다. 문진의 희망자들은 의과대학 졸업 후 전공의 채용에서 탈락하거나, 은퇴를 한 의사들이 대부분이다. 출장검진기관에서도 기존 인력 대신 단기간 의사면허를 소지한 이들을 활용해 노인 대상의 출장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문진의 지원자 중에는 개인 신상 문제로 병원에 고용된 의사로 등록되기를 꺼리는 의사들도 있다. 출장검진 관련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려진 자기소개 글을 살펴보면 ‘등록 가능하며 아무 때고 일할 수 있다’ ‘개인 문제로 등록은 불가능하다’는 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노인 대상 출장검진은 출장검진기관뿐 아니라 의사면허를 소지한 이들에게도 단기간 목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문진의사들이 출장검진에서 하는 일은 뭘까. 오전 8시까지 출장검진이 실시되는 지역에 도착해 오전 11시까지 간단한 의료상담만 하면 모든 일과가 끝난다. 지방의 한 종합검진센터 관계자는 “관련 법에 상담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 문진의사를 고용할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며 “검진자가 많지 않으면 출장 현지가 아닌 병원으로 이동해 점심 먹고 퇴근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실제 서울의 한 대형 건강증진센터의 출장검진 문진의사 초빙광고를 보면 ‘밝고, 긍정적인 서비스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성실하고 시간약속을 잘 지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 지방 출장이 가능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근무요건으로 제시돼 있다. 의사초빙 광고라기보다 여행사 직원초빙 광고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출장검진 문진의사들은 출장검진기관에서 불법으로 검진자를 모집해 검진을 실시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현재 문진의사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는 한 일반의는 “병원에서 요구하는 대로 상담만 하고 퇴근하기 때문에 검진자들이 어떻게 모이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시골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기자 물음에 “할 일을 할 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건강검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국가건강검진 사업이 일부 출장검진기관과 의사들만의 ‘잔치’로 전락해 있다.

김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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