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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소득 없는데 건보료 3배로… 집 팔아 내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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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소득 없는데 건보료 3배로… 집 팔아 내라는 건지"

입력
2015.01.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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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받아 겨우 집 샀는데 재산 기준으로 적용해 2배 올려

무료급식으로 생활하는 할머니 폐허된 상가 있다고 3만원 내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인천 남동구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린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인천 남동구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린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집을 팔아서 건강보험료를 내라는 건가요.”

물류회사에서 일을 하다 2011년 11월 교통사고로 회사를 그만 둔 이모(44)씨는 직장을 다닐 때 5만7,000원을 내던 건보료가 퇴직 후 16만원으로 올랐다. 이씨는 “집과 차가 있다고 해도 별다른 수입도 없는데 보험료는 더 오르니 짜증이 치밀었다”며 “지금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 보험료는 일할 때보다 높으니 부과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현행 건보료 부과 체계는 소득에만 보험료가 부과되는 직장가입자에 비해 집, 자동차 등 재산에 복잡한 부과기준을 적용해 보험료를 매기는 지역가입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다. 특히 직장을 다니다 실직이나 퇴직을 한 경우에는 소득은 줄어들지만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는 오히려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돼 건보공단에 제기된 민원만 지난해 6,000만건에 달했다.

15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후 수도권에서 부인이 운영하는 부동산중개업소 일을 돕고 있는 윤모(56)씨는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퇴직 전 연봉 5,000만원을 받은 윤씨는 5인 가구 기준으로 17만원 가량을 건보료로 냈다. 그런데 퇴직 하자마자 당시 3억 원 상당이었던 집과 상가를 기준으로 건보료가 뛰어 29만원이 됐다. 윤씨는 “지금도 개인 소득은 거의 없는 수준인데 건보료는 계속 오르더니 34만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을 기준으로 부과하더라도 실질적인 재산으로 해야 한다. 60% 이상이 대출인데 그걸 재산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12년째 미술 과외 교사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은희(가명ㆍ35)씨는 지난해 여름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5만원 안팎이던 건보료가 2배 올랐다. 보증금 2,000만원에 50만원씩 월세를 내며 돈을 모아 집을 마련했음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김씨는 “수입이 똑 같은 사람한테 건보료를 왜 더 받느냐”며 “전체 소득이나 재산은 보지 않고 은행 대출을 받아 구입한 집을 재산으로 적용해 건보료가 오르니,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토지와 상가 등 재산을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0원’이어도 지역가입자면 보험료가 부과된다. 충북 충주시의 최모(84) 할머니는 1,167만원 상당의 상가와 1,924만원 상당의 토지가 부과 기준이 돼 월 3만6,150원의 건보료가 부과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집은커녕 소득도 전혀 없어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먹으며 생활하는 노숙자다. 할머니의 상가는 이미 폐허가 됐고, 토지에는 부모의 산소가 있어 실질적인 재산 활용가치가 전혀 없는데도 보험료가 부과된 것이다.

지역가입자가 돼 보험료가 인상될 경우 위장취업을 하거나 직장가입자인 자녀들의 부양가족으로 이름을 올려 무임승차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달 9일 건보료 개편 워크숍에서 “연예인들은 실질적으로 받는 출연료가 사업소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연예인협회 고문 사무총장의 직함을 받아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식으로 위장 취업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이 없어도 건보료를 내야 했던 최 할머니와 달리 연금소득이 수천만원에 달하더라도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하면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현행 건보료 체계에서는 연금소득 등 개별소득이 4,000만원 이하면 피부양자 등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퇴직 후 건보료가 16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랐던 한 전직 공무원은 보험료를 적게 낼 방법을 찾다가 월소득 180만원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했다. 이 전직 공무원의 연금소득은 3,600만원으로 자녀의 소득보다도 높다. 이 때문에 피부양자의 인정기준 개선안도 개편안에 담겼지만 계획이 철회되면서 백지화됐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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