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17일 임신중절(낙태) 수술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 규칙을 공포하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28일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복지부가 한발 물러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참석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해당 의사들에 대한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복지부는 “시행규칙 개정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을 구체화해 처분 기준을 정비한 것에 불과해 과거와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법원에서 실형을 받아야만 자격정지 조치가 이뤄졌지만 이번 규칙 개정으로 법원 판결 없이도 복지부가 처분할 수 있게 돼 산부인과의사회의 반발을 초래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가 만연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우리 법은 강간, 근친상간, 유전학적 질환 등의 예외를 제외한 낙태행위를 전면 금지하지만, 사실상 사문화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연간 100만 건의 낙태가 이뤄지지만 합법적인 수술은 5~6%에 불과하고, 낙태죄로 재판받는 경우는 연간 10건 안팎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헌재는 낙태죄 위헌 심리를 진행 중이나 다음달 재판관 5명의 임기만료로 올해 안에 선고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낙태죄 논란의 해묵은 쟁점은 사익인 임신부의 자기결정권과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 보호 중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OECD 상당수 국가들이 빈곤 등 ‘사회ㆍ경제적 적응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낙태죄에 엄격했던 아일랜드까지 5월 국민투표를 거쳐 66%의 찬성률로 낙태를 허용했다.
낙태죄의 근거가 되는 모자보건법은 1973년 개정 이후 변화한 사회적, 의학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도 헌재에 낙태죄 조항을 재검토하라는 의견을 냈다. 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낙태의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판결에 이은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그때까지 행정처분은 유예해야 하고, 산부인과의사회도 수술 파업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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