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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출신 판사, 변호했던 회사 재판서 ‘공정 판결’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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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출신 판사, 변호했던 회사 재판서 ‘공정 판결’ 할 수 있나

입력
2018.08.05 20: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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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다른 사건이면 합법” 설명에 

 판사 변호사 영역구분 점차 사라져 

 사법 신뢰위해 보완책 주문 목소리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신상순 선임기자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신상순 선임기자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경력법관으로 채용된 현직 판사가 과거 소송을 맡았던 은행의 민사사건 재판을 맡아 은행에 승소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변호사 출신 법관이 늘어나는 추세인 점을 감안할 때 공정성 확보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소속 A판사는 올해 2월 “계좌이체와 환전 과정에서 은행 직원의 실수로 4,711만원 피해를 봤다”며 캐나다 교민 B씨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맡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문제는 A판사가 과거 변호사 시절 하나은행 사건을 수임한 소송대리인이었다는 점이다. A판사는 하나은행이 한 정부출연기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2016년 12월까지 은행 측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지난해 2월 경력법관에 임용됐고, 같은 해 5월 B씨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재판장을 맡았다. 서로 다른 사건이기는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하나은행의 소송대리인에서 판사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 배정이지만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게 대법원의 해석이다. 민사소송법 41조는 ‘법관이 사건 당사자의 대리인이었던 때’에만 재판에서 제척(배제)하도록 하고, 제척 이유가 있는 판사가 한 판결은 무효가 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동일 사건’인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고, 당사자가 같아도 사건만 다르다면 제척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이 제정된 후 줄곧 ‘동일 사건’으로만 적용돼 왔고, 한 번도 ‘동일 당사자’로 해석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대법원 해석은 판사ㆍ검사ㆍ변호사의 영역이 비교적 확실히 갈렸던 예전에는 문제 소지가 덜하나,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일원화(경력 있는 변호사는 판ㆍ검사로 임용하는 제도) 도입으로 대형 로펌 출신 판사들이 늘어나고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임용된 569명 법관 중 127명이 과거 대형 로펌에 속해 있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변호사 출신 판사가 과거 대리했던 소송을 명확하게 밝혀 문제소지를 없애고, 임용 후 몇 년 동안 의무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내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계속 방치할 경우 공정성 시비와 함께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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