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하 기자

등록 : 2018.06.12 15:47
수정 : 2018.06.12 20:02

“性이슈에 대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등록 : 2018.06.12 15:47
수정 : 2018.06.12 20:02

나희경 페미씨어터 대표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기획

9개팀이 다양한 주제를 다뤄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포스터.

“엄청난 변화를 기대한다기보다 바늘 하나 정도가 꽂히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 연극들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왜 연극에서 여성 주인공을 보기가 어려울까, 왜 남성 중심 서사에서 여성 캐릭터에게는 ‘엄마, 성녀, 창녀’ 역할만 주어지는 걸까… 연극인들은 오랫동안 ‘무대 위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고민해 왔다. 올해 초 연극계에서 촉발된 ‘미투(#MeToo)’ 운동으로 연극계 내부 가부장제적인 위계질서와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연극 작품에 대한 논의도 확산했다. 연극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성 이슈를 다룬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가 20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다.

연극제를 기획한 이는 나희경(30) 페미씨어터 대표다. 대학로 공연기획사와 남산예술센터 등에서 일한 그는 2014년 독립해 기획자로 연극을 만들고 있다. 연극제 기획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나 대표와 마주했다.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를 기획한 나희경 페미씨어터 대표는 "연극제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주성 기자

페미니즘 연극제 기획은 2016년 발아했다. 한 남성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공용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던 20대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계기였다. “평소에도 젠더 문제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연극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극제 작품공모 글을 올렸고, 10여개 단체가 연락을 취해 왔다. 작품 내용과 극단의 제작비 감당 여부를 논의한 결과 연극제에 참가할 9팀이 꾸려졌다. 나 대표는 “연대 혹은 희생으로 만들어진 연극제”라며 웃었다.

공연되는 작품의 주제는 다양하다. 성을 구매하려는 장애여성과 성 판매 남성 사이의 입장 차를 통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조건 만남’, 연극계 미투 운동 이후 달라진 삶을 살아 보려는 배우 이야기를 담은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 대학원 졸업 후 학자와 전업주부라는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여성의 삶을 그린 ‘환희, 물집, 화상’ 등 다양한 시선을 가진 작품들이 선정됐다. 구자혜, 이오진 등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들도 참여한다.

나 대표는 ‘페미니즘’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고 했다. “연극을 보고 나서 ‘이게 페미니즘이야?’라고 되물을 수도 있어요. 저는 페미니즘이 여성, 장애인, 소수자 등 끊임없이 확장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으로 시작했지만 모두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주제가 겹치는 작품은 하나도 없어요.”

젠더 이슈가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나 대표도 고민이 늘었다. “‘조건 만남’이라는 작품은 여성 장애인의 성 문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에요. 그런데 성매매 내용이 다뤄지기 때문에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공연되는 게 정당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어요. 문제제기는 좋지만, 어떤 이야기는 다뤄져선 안 된다고 정답을 내리는 건 원치 않아요. 저는 작품들이 어떤 논의의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페미니즘 연극제는 수익성을 목표로 기획되지 않았다. 연극제 주최 측이 극장 대관을 맡아 진행하고, 티켓 판매 수익은 극단에 최대한 돌려줄 계획이다. 지난 2월 크라우드펀딩을 해 759명이 1,800만원 이상을 후원했다.

페미니즘 연극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연극제가 없어져도 될 만큼 성 평등한 사회가 되는 것. 하지만 그날은 요원하다. “연극을 보지 않았던 페미니스트 관객들이 새로운 관객으로 유입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들의 피드백을 통해 연극계 내부에서는 생각의 범위가 확장되길 바라고요. 페미니즘 연극제의 의의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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