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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될 수 없는 수치여사, 어떤 역할 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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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될 수 없는 수치여사, 어떤 역할 맡나

입력
2015.11.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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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아웅산 수치 여사가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9일 아웅산 수치 여사가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25년 만에 치러진 미얀마 자유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역사적 승리가 점점 확실해 지고 있다.

9일 빨간 티셔츠를 입은 NLD 지지자들은 쏟아지는 폭우도 아랑곳 않고 최대도시 양곤의 NLD 당사 밖에서 선관위의 중간 개표 발표를 기다리며 역사적 승리를 기뻐했다. AP는 이들이 당사 외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수치 여사의 모습을 보며 당의 총선 주제가를 불렀다고 보도했다. 당의 상징인 공작을 빗댄 ‘강한 공작’이라는 이 노래는 총선 캠페인 기간 동안 전국의 지지자들에게 널리 불렸다. 이날 폭우가 쏟아진 와중에도 지지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는 전세계가 알고 있는 민중의 지도자… 우리의 미래를 위해 당신의 마음으로 우리의 역사를 쓰자, 그래서 독재는 끝날 것이다, 독재는 멀리 멀리 가 버려라”는 가사를 목청껏 외쳤다.

9일 미얀마의 최대도시 양곤에 있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이 개표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환호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9일 미얀마의 최대도시 양곤에 있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이 개표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환호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도 야당의 압승이 유력한 총선 결과를 환영했다. 미국 존 케리 장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수십년 동안 미얀마 국민들이 보여준 희생과 용기의 증거”라고 축하하면서도 “선출되지 않은 군부가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로힝야족과 같이 이전 선거에서 투표한 소수민족들의 선거권이 박탈됐으며, 참정권을 자의적 적용해 후보자가 탈락되는 이번 선거는 진정한 민주선거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홍레이(洪磊) 가 9일 “미얀마의 친밀한 이웃으로써, 중국은 미얀마의 안정과 장기적 발전 실현을 위해 법에 따라 선거 후 모든 정치적 의제에 대해 미얀마를 지원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수치 여사의 27년간 굴하지 않는 민주화 운동

이번 총선 결과는 수치 여사가 27년간의 민주화 운동 끝에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한 수치 여사는 1988년 8월 8일 벌어진 전국적인 ‘8888’민주화 운동과 군부의 무참한 진압과정을 목격하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주도한 민주화 운동은 군부 독재자 네 윈을 쫓아냈으나 군부의 민주화 운동 진압과정에서 3,000여명이 숨졌으며, 그 역시 1989년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서방의 압력에 못 이겨 군부가 실시한 1990년 총선에서 NLD는 82%의 지지를 얻어 압승했으나, 군부는 정권이양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2010년까지 수치 여사는 가택 연금과 해제를 반복하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가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출국이 허락되지 않아 영국인 남편 마이클 애리스와 두 아들이 대리 수상했으며, 1999년 영국에서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을 때에도 다시 미얀마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출국을 포기했다. 수치 여사가 미얀마로 귀국한 1988년, 겨우 15살, 11살 소년이었던 두 아들과도 오랜 기간 생이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장남 알렉산더는 어머니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어머니가 가택연금에 풀려난 뒤에도 모친을 자주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수치여사의 역할 주목

미얀마는 대통령 중심제로 운영되지만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 의회에서 선출되는 구조여서 상하원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 지도자는 자연스럽게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NLD가 의회 의석 과반수 확보하더라도 수치 여사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군부가 2008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영국인과 결혼한 수치 여사를 겨냥해 ‘외국인을 배우자로 두거나 외국 국적의 자녀를 둔 사람은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헌법 수정이 없는 한 내년 2월초로 예상되는 대선에 수치 여사는 입후보할 수 없다.

수치 여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NLD가 승리해 대통령을 내면 자신은 ‘대통령직 위의지도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만약 개헌을 하지 않는다면 NLD에서 다른 당원을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수치 여사가 막후에서 실질적으로 통치를 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개헌이 추진된다면 외국인 가족을 둔 이에 대한 대통령 출마 제한 조항뿐만 아니라 군부의 의회 의석 25% 할당 조항도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치 여사는 그 동안 두 조항의 개정을 요구했으나 군부는 이를 매번 거부해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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