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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기내식 대란', 하청-재하청 갑질이 비극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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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기내식 대란', 하청-재하청 갑질이 비극 불렀나

입력
2018.07.04 04:40
수정
2018.07.04 16:2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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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 납품 담당할 업체 화재에도

기존업체 계약 6월에 그대로 종료

새 공장 완공 9월까지 임시 계약

소규모 업체에 맡겨 문제 자초

하청사 대표 죽음에도 별 조치 안 해

#2

이달부터 공급 계약한 샤프도앤코

재하청으로 주문량 맞추려다 실패

어제도 항공기 43대 기내식 못 실어

“하청-재하청 과정 압박 컸을 것”

아시아나 항공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기내식 공급 차질과 이로 인한 운항 지연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한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승객이 항공기 지연으로 인해 지급받은 1만원권 서비스 바우쳐를 보여주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아시아나 항공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기내식 공급 차질과 이로 인한 운항 지연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한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승객이 항공기 지연으로 인해 지급받은 1만원권 서비스 바우쳐를 보여주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주문을 맞추기 위해 사장이 앞장서 밤새 음식을 포장했는데, 포장용기만 제때 공급됐어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3일 오후 인천 서구 한 병원에 마련된 이 지역 출장음식서비스업체 H사의 윤모(57) 대표의 빈소를 찾은 회사 직원들은 황망함과 분노로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윤 대표는 전날 아침 인천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윤 대표의 비극은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납품하는 샤프도앤코와 재하청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H사는 1일 인천공항에서 출발 예정이었던 국제선 80편에 기내식을 납품하기로 했지만, 그중 12편에 기내식을 싣지 못했고 파문이 확산되자, 책임감을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빈소에서 만난 H사 직원은 “납품 며칠 전부터 샤프도앤코에서 정해준 작업장으로 직원들이 대거 옮겨가 기내식 준비를 해왔지만, 용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음식 포장이 계속 늦어졌다”며 “대표와 간부 직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기내식을 포장했으나 납기를 맞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비극과 3일째 계속되는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 뒤에도 우리 사회 고질적 병폐인 ‘갑질’이 숨어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갑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익은 더 많이 가져가면서도, 위험은 을ㆍ병에게 전가하는 불평등한 계약관행이 여전한 것이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3개월간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기로 한 급식업체 샤프도앤코는 주로 저가항공사에 3,000식 규모로 기내식을 공급해오던 업체였다. 그런데도 아시아나항공은 하루 2만식 이상 기내식 제작을 요구했다. 게다가 계약에‘기내식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납품 단가를 낮춘다’는 조항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청업체인 샤프도앤코는 자체적으로는 납품이 불가능하지만 재하청을 통해 맞추려 했으며 결국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형적인 불공정한 ‘하청ㆍ재하청’계약이 맺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는 샤프도앤코와 계약 시 8일까지는 배상 면책 기간을 부여했으나, 납품 첫날부터 차질을 빚게 되자 샤프도앤코가 재하청 업체들에게 과도한 압박을 줬을 것으로 여겨진다”며 “사건의 근본원인은 아시아나항공이 규모에 못 미치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아시아나항공은 윤씨의 죽음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빈소를 찾은 윤 대표의 친구는 “아시아나항공 측에서 유족에게 애도 전화 한 통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기내식 공급은 계약은 협력업체인 샤프도앤코가 하기로 한 것”이라며 “안타깝긴 해도 고인도 모르는 분이며 회사 측에서 해줄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따지고 보면 기내식 대란의 발단 역시 아시아나항공이 자초한 것이다. 2003년부터 기내식을 납품하던 업체와 계약을 종료하면서 벌어졌다. 새로 기내식 납품을 담당할 게이트고메가 지난 3월 인천공항에 짓고 있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아시아나 항공은 충분한 대비 없이 6월말 예정대로 과거 기내식 납품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 대신 새 업체의 공장이 완공되는 9월까지 소규모 업체와 납품 계약했다.

게다가 납품업체 교체 이유 역시 의혹투성이다. 2003년부터 납품을 담당하던 LSG스카이세프는 아시아나항공이 재계약을 조건으로 지주사인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에 대한 투자를 요구해왔고, 이를 수락하지 않자 계약을 종료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한 상태다. 공교롭게도 새 계약 업체의 모회사인 HNA그룹(하이난항공그룹)은 지난해 금호홀딩스가 운영자금 목적으로 발행한 BW를 1,600억원에 취득했으며, 30년간 기내식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당시는 금호홀딩스 대주주인 박삼구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LSG 측에 지원을 요구한 사실도 없고, 공정위에서도 2차례 모두 무혐의로 LSG 신고는 각하됐다”며 “LSG에게 공급단가 공개와 품질개선 요구를 수차례 해왔지만 개선되지 않아 다른 업체를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내식 대란은 3일째 이어지며 이날 1시간 이상 지연된 항공기가 2대이며, 기내식을 싣지 못하고 출발한 항공기가 43대에 달했다.

인천=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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