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지적장애 엄마 손에 숨져
세차례 신고·격리 조치 무용지물
처벌 위주 법, 재학대 막지 못해
부모 심리상담·모니터링 시급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한 쪽방촌. 큰 길에서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틈새골목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골목을 끼고 안으로 들어서면 맨 끝에 문이 잠긴 허름한 단칸방이 나온다. 13㎡(4평)에 월세 25만원인 이 작은 방에서 한달 전 두 살배기 허모군이 엄마의 손에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러나 29개월이란 짧은 삶을 마친 허군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허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부모였지만,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였다. 주민들은 허군의 부모가 애를 키울 상황이 아니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실제로 허군은 세 차례 부모 폭력과 방임의 피해자로 신고됐고, 한 번은 격리조치 됐다가 엄마 손에 다시 넘어갔다.
2013년 2월 허군이 태어났을 때 아빠와 엄마의 나이는 50과 40을 넘은 나이였다. 아기의 탄생은 축복이지만, 허군의 부모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허군이 태어난 그 달에 이웃주민들은 부모가 허군을 방임한다며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이듬해 7월에도 허군 학대 신고가 경찰에 들어왔다. 이날 만난 이웃들은 “허군이 자지러지게 울어도 부모는 본체만체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오죽하면 이웃들이 나서 신고를 했겠느냐고 했다. 아이 방임은 심각한 학대였지만, 폭력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격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허군을 살릴 수도 있던 두 차례 신고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다시 두 달 뒤인 작년 9월, 이번에는 아빠(52)가 허군을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부 싸움 중 김치통을 쏟고 말썽을 부렸다는 이유였다. 엄마 변모(43)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빠는 아동학대 혐의가 인정돼 80시간의 상담교육을 받으라는 보호처분결정을 받았다. 이때 허군은 마침내 아동학대 특례법에 따라 지역아동보호기관에 격리조치 됐지만 이마저 오래가지는 못했다. 엄마 변씨가 "내 아이를 돌려 달라"며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관할구청과 아동보호기관, 정신상담센터 등은 변씨가 우울증이 심하고, 장애(지적장애 3급)가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정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달리 주민들은 엄마가 애를 양육할 조건이 안 되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당국의 판단은 허군이 안전할지,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려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게 허군은 작년 12월 말 다시 그 골목 끝 단칸방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그리고 6개월 뒤인 지난달 1일 허군은 숨진 채 발견됐다. 어린 그 입이 스타킹으로 묶여 질식사한 것이었다. 엄마 변씨가 허군이 울자 이를 막으려고 자신의 스타킹으로 범행을 저지른 뒤 아들의 침이 묻은 스타킹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동학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아동학대 특례법이 내달로 시행 1년을 맞는 가운데 허군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숙제를 남기고 있다. 허군의 경우 가정폭력이 외부에 드러난 것만 서너 차례나 됐지만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례법은 친권을 빌미로 묻혀 왔던 아동학대를 제대로 조사토록 한 의의가 크지만, 가해자 처벌위주의 법은 재학대 등 2차 피해를 막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부모 처벌보다 부모에게 심리치료나 상담이 제대로 이뤄져 가정 전반에 대한 예방 대책이 세워졌다면 허군도 충분히 살릴 수 있던 셈이다. 이 교수는 “학대 발생시 가족 구성원들에게 심리 상담을 의무화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허군의 엄마 변모씨는 살인죄로 구속된 상태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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