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묻지마 살인 피의자, 유독 여성에만 증오심 품어
범행 전에도 남성은 지나쳐… 전문가 “약자의 무시 불쾌했을 것”
서울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을 놓고 여성혐오냐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의 범죄냐는 논란이 일부 있지만 핵심은 약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대와 멸시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약자를 향한 범죄 및 공격에는 사회적으로 과도한 압박ㆍ경고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잇따른다.
강남역 살인은 여성차별의 다른 이름
경찰은 22일 강남 살인사건을 조현병 피의자 김모(34)씨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결론 내렸다. 여성을 겨냥한 증오 및 혐오의 증거가 뚜렷하지는 않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범죄 전문가들은 김씨가 증오 대상을 2년 전부터 여성으로 좁혔고, 사건 당일에도 남성들은 모두 돌려 보내는 대신 여성을 노린 점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김씨의 최근 행적을 보면 음식점에서 일하며 남녀 모두에게서 구박을 받았지만 왜 여성만 언급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며 “결국 상대적으로 여성이 약한 존재라는 사회 저변인식이 피의자의 잠재 의식에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신질환자가 그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있듯이 김씨의 범죄 역시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 범행했다’는 김씨의 진술은 망상에서 기인했지만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기 어렵다”며 “여성이 남성을 무시하는 일이 남성에게 유독 불쾌한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혐오보다 약자에 대한 분노가 근원
약자여서, 또 만만해서 피해자가 되는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일 대전 대덕구의 한 아파트에서 A(16)군이 후배와 말다툼한 뒤 화가 난다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 B(28ㆍ여)씨의 머리를 벽돌로 내려친 사건이 발생했다. 단지 여성이고 자신보다 체격이 작다는 이유였다. 성폭력 피해자 중 장애인과 노인 등의 비중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잘못된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2013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조사 결과 성폭력피해자 3,875명 가운데 장애인은 전체의 43%(1,673명)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60세 이상 성폭력 피해자가 2010년 276명에서 2014년 493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경찰 통계도 있다.
약자가 약자를 상대로 한 범행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올해 3월 부산에서는 학창시절 집단 괴롭힘을 당한 후 정신질환을 앓던 20대 여성이 폐지를 줍고 귀가하던 80대 할머니의 어깨를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로 찔렀다.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불안정성으로 인한 분노가 계층을 막론하고 소수자와 약자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회가 불안해지고 규범이 와해하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지목해 분노를 키우는 모습이 드러난다”며 “이는 관계 단절로 이어져 결국에는 약자에 대한 책임전가로 끝이 난다”고 진단했다.
약자 범죄에 더 민감해야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목표로 한 범죄에는 좀 더 엄격히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문유석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약자 공격과 혐오 본능 발현에는 과도할 정도의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웅혁 교수는 “미국이나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소수자 혐오발언과 폭행에 가중처벌을 하고 있다”며 “관련 모니터링 부서를 따로 설치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주말에도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사건 현장 인근인 강남역 주변은 물론 대전지하철 시청역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등에도 위로의 포스트잇 메모와 국화꽃 등이 쌓이는 등 추모 분위기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이날 오후 2시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극우성향의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모여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에 항의한다”며 일부 추모객과 충돌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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