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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 르포] 단둥 대낮 탱크 행렬 ‘깜짝’… 북한 노동자들 “짐 싸려니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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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 르포] 단둥 대낮 탱크 행렬 ‘깜짝’… 북한 노동자들 “짐 싸려니 막막”

입력
2018.01.02 13:3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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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대북제재로 2년 내 귀국해야

“브로커에 준 돈 벌게 해달라” 사정도

中, 北 6차 핵실험 후 국경 감시 강화

옌지 도심서도 병력 이동 “전쟁 날라”

지난달 24일 단둥시내에서 탱크행렬이 지나가는 모습.
지난달 24일 단둥시내에서 탱크행렬이 지나가는 모습.

“오 십년 간 여기 살면서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이동하는 건 처음 봤다.”

지난달 24일 북중 접경지역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 김모씨는 며칠 전 시내 한복판에서 봤던 군 부대 이동 장면을 떠올렸다. 족히 60대가 넘어 보이는 대형트럭마다 완전 군장을 한 군인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고, 트럭들은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또 다른 접경 도시 룽징(龍井)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잦아진 접경지역 軍부대 이동

김씨에 따르면 옌지와 훈춘(琿春)ㆍ투먼(圖們)ㆍ룽징ㆍ허룽(和龍) 등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인접한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선 지난해 하반기 내내 크고 작은 군 부대 이동이 이전보다 부쩍 잦아졌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9차 공산당대회를 전후로 경계태세 강화 차원 조치가 취해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정도가 심했다는 게 김씨의 전언이었다. 투먼에서 만난 주민 저우(周)모씨도 “둔화(敦化)시에 있던 군 부대가 옌지를 거쳐 이 곳 투먼과 룽징ㆍ허룽 등지의 두만강변 국경에 배치돼 훈련한 뒤 복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더라”면서 “아무래도 북한에서 무슨 큰 일이 날 것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날 오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의 한 대북소식통도 지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영상을 보내왔다. 단둥시내에서 탱크 여러 대가 이동하는 장면이었다. 이 소식통은 “대낮에 탱크가 시내 도로를 이용해 이동했다는 건 북한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틀 뒤 단둥을 찾았을 때 다른 대북 소식통에게 영상을 보여줬더니, “단둥시내에서 촬영한 게 맞다”면서 “일반 군용트럭도 아니고 탱크 이동이 있었다면 뭔가 심각한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외신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중국 군 당국이 북중 접경지역 경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최대 100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을 이동 배치했다거나 접경지 주둔군을 위한 새로운 주거시설을 건설하고 있다는 뉴스를 쏟아냈다. 물론 현지 주민들이 직접 목격한 군부대 이동은 연례적인 훈련 차원의 이동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이동의 극히 일부만 노출됐을 텐데도 주민들의 체감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두만강 건너 북한과 인접한 중국 투먼시 강변공원.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두만강 건너 북한과 인접한 중국 투먼시 강변공원.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갈수록 엄격해지는 국경 감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투먼ㆍ훈춘ㆍ룽징 등지는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 이후 국경 감시가 한층 엄격해졌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정도이던 주요 도로 검문이 거의 매일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여권 소지자들은 관광객이라도 출입이 거부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옌지에서 고속도로를 경유해 투먼으로 들어갈 때는 다행히 검문이 없었지만, 이튿날 훈춘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선 검문 때문에 결국 옌지로 차를 돌려야 했다.

도로 검문이 없었다고 안심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과 마주한 곳에 조성된 강변공원은 투먼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현재는 관광로 대부분이 폐쇄됐다. 또 곳곳에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어 사진조차 맘놓고 찍을 수 없다. 영하 2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 찾아간 강변공원에는 현지 주민들 외에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북한지역을 향해 사진을 찍자 곧바로 군인 세 명이 다가와 제지하더니 ‘어디에서 왔는지’, ‘방문 목적이 뭔지’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강폭이 5~6m에 불과한 이 곳에는 중국 측 강변을 따라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관광객을 태우는 유람선 선착장 주변은 예외다. 조심스레 선착장 쪽으로 내려갔더니 금세 한 군인이 나타나 “강이 얼어서 배를 탈 수 없다”고 소리쳤다.

투먼은 북중 교역 확대를 염두에 둔 1급 통상구가 설치돼 있고 한국의 몇몇 중소기업들까지 입주한 ‘중소기업 창업기지’가 조성돼 있지만 이제는 사전 약속 없이는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다. 북한 노동자들의 숙소가 있는 조선(朝鮮)공업원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심지어 2차선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멀찍이 보이는 탈북자 수용시설(투먼변방관리소)을 향해 셔터를 눌렀는데도 어디선가 금세 무장군인이 나타나 사진 촬영 여부를 확인했다.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

이 같은 분위기는 당연하게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듯했다. 투먼시 주민 쉬(許)모씨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거나 미사일을 쏘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과 ‘이러다 정말 전쟁 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데 군인들도 더 많아지고 경계도 강화되고 하니 불안감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옌지시 주민 천(陳)모씨도 “군인들이 이동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고 북한과의 관계도 별로 좋지 않다고 하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지난달 초 웨이보(微博)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잠시 게재됐던 북한 난민 수용소 건립설이 화제였다. 옌지 시내에서 만난 옌볜대학생 황모씨는 “이동통신회사가 수용소 건설 예정지를 직접 방문해 조사한 내부문건이란 점에서 단순 해프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천(陳)모씨는 수용소 건설 예정지로 언급된 장바이(長白)현에 대해 “몇 년 전부터 북한 난민수용소 최적지로 꼽혔던 곳이라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고 했다.

지난달 초 지린성 관영매체인 지린일보는 핵물질 오염 대비법을 상세하게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통상적 교육에 불과하다는 해명했지만, 주민들의 시각은 달랐다. 옌지서역에서 만난 마(馬)모씨는 “북한의 핵실험 장소와 멀지 않은 곳이라 방사능 오염물질이 이 쪽으로 넘어올 거란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옌지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시진핑(習近平) 사상 학습모임에 참석한 옌지시정부 공산당위원회 한 관계자도 “당장 오늘 내일 터질 일은 아니겠지만, 전쟁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단둥 지역도 눈에 보이는 경계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주민들의 위기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둥역에서 만난 왕(王)모씨는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면 더 고립될 텐데 그러면 마지막 선택은 전쟁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너무 많이 들어 무덤덤해진 측면이 있지만 중국ㆍ미국ㆍ북한이 합의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전혀 없는 투먼시 강변공원의 기념촬영 장소. 바로 너머가 북한이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전혀 없는 투먼시 강변공원의 기념촬영 장소. 바로 너머가 북한이다.

불안감 휩싸인 北 노동자들

한 때 호황을 누렸던 옌지시내 북한 식당들은 지난 1~2년 새 거의 다 문을 닫았다.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한국인 손님도 줄고 현지 주민들도 외면했기 때문이다. 아예 철수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중국 식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북한 접대원들을 계속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식당을 비롯해 접경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은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한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1,2년 안에 모두 짐을 싸야 한다. 옌지시내 중심가의 한 해산물 전문식당에서 일하는 북한 접대원 최모씨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새로 계약도 할 수 없고 2년 이상 더 있을 수도 없다고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투먼시 외곽에 위치한 조선공업원 내 북한 노동자 숙소는 이미 꽤 많은 빈방이 생겼다고 한다.

그림1 북한 수출입규모
그림1 북한 수출입규모

단둥은 북중 교역이 가장 활발한 만큼 타격도 훨씬 커 보였다. 북한 노동자 1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업가 리(李)모씨는 “요즘 들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물어오거나 단둥으로 일하러 올 때 브로커에게 준 돈만큼이라도 벌게 도와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달 9일까지 북한 식당 등이 문을 닫게 되면 그 곳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은 신규 계약을 할 수 없는 만큼 원칙적으로는 모두 귀환해야 한다.

한 대북소식통은 “단둥이나 투먼 등 접경지역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인력송출회사나 당 간부에게 적잖은 돈을 추가로 줬을 것이고 사실상 불법 취업 상태인 경우도 상당수일 것”이라며 “대북제재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가까워올수록 이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옌지ㆍ투먼ㆍ단둥=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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