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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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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입력
2009.03.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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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가을.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에서 각 정파(政派)는 수 차례에 걸친 회의 결과 정치교육의 최소조건을 확정했다. 합의에 도달한 이 협약은 정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일거에 제거하려는 일종의'사회적 대타협'이었다.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협약이라고 불리는 원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 정치교육의 최소조건

첫째, 강제성의 금지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정치적 견해를 강압적으로 주입함으로써 학생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다. 이것으로 바람직한 정치교육과 주입식 교육은 구분된다. 교육 이론적으로도 주입식 교육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의 바람직한 역할과 합치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능동적인 사고력 형성을 방해한다.

둘째, 논쟁성의 유지다. 이 조건은,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이 등장하는 것처럼 수업 상황에서도 그러한 논쟁적 상황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요구는 물론 제1원칙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논쟁이 되는 상이한 입장들이 소개되지 않고 대안들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을 경우, 주입식 교육으로 곧장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에게는 학생들에게 정치적ㆍ사회적 기원이 다른 입장과 그 각각의 대안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교사는 이 원칙을 확고히 준수하기 위해 자신의 학문 이론적 원천과 정치적 견해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치적 행위능력의 강화다.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학생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을 판단하는 데에 기본적인 준거를 자신의 삶의 경험에 기초하여 자연스럽게 판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여 특정 정치적 입장을 수용하고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인터넷 공간에 쓰인 댓글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해방정국의 '친일파 대 빨갱이' 구도에 있지 않은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정치권에서도 권력을 가진 쪽이나 비판하는 쪽 모두 서로의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생각이 다른 쪽의 몰락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하는 형국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국회에선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토론과 합의가 실종되었다. 학교 현장에서도 교사조직 사이의 이념적 대립으로 인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 사회, 교육 장면에서의 극한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같은 대타협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간단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서구의 사회발전 모형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공동체 공멸적인 극단 상황을 피하려는 칼 포퍼(Karl Popper)적 사회관에 기초해 있다. 또한 서구에서 정치적 타협이 가능했던 근거는, 스펙트럼의 양 끝에 속하는 이데올로기가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사회 구성원들은 그러한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가 위험한 범죄적 경향에 가깝다는 기본적인 합의가 광범위하게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냉전논리와 같은 극단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정치권력의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형적인 상황에 있다. 특히 남북 대치 상황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공존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어 왔다.

소모적 이념 대치 종결해야

그럼에도 현재 우리의 사회 모든 분야가 단기간에 치유하기 힘든 갈등 상황에 있다는 점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소모적인 이데올로기적 대치를 종결시킬 필요가 있다. 미디어 관련법을 공론화하기 위해 설치된 '사회적 논의기구'가 벌써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들린다. 사안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그 결과 양보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일상적인 사회. 단지 상상이 아닌 실현을 위한 정치ㆍ사회적 결단을 기대해 본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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