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가르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은 고교 교사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10년 차인 이 교사는 지난해까지 상업과목을 가르치다 올해부터 역사와 상업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역사수업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짧은 경력의 교사에게 국정교과서 집필을 맡겼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러고도 ‘명품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 친 정부의 무책임과 안이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한 상업고교에 재직하는 김모 교사는 최근 동료 교사들에게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학교 측도 이 메시지를 보고서야 김 교사가 집필진에 포함된 사실을 알았다. 대학수능시험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비밀작전 하듯이 하는 행태가 정상적일 수는 없다. 김 교사가 메시지에서 “국사편찬위원회가 얼마나 비밀을 강조하는지 질릴 정도”라고 한 것만 봐도 그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결국 이런 비밀주의가 김 교사처럼 수준 미달의 집필자를 낳게 한 배경이다. 국편은 지난달 집필진 구성을 발표했지만 모두 47명이라는 것 외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집필진이 누구인지, 학문적 이력은 어떤지, 소속 기관과 학교가 어디인지 일체 밝히지 않았다. 그들이 교과서를 집필한 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할 방법이 원천적으로 막혀버렸다. 만약 신상정보가 공개됐다면 이번 같은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는 게 관련 경력의 전부인 김 교사가 ‘교육경력 5년 이상인 역사, 사회과학 관련 학계의 교수 및 연구원, 현장 교원’으로 규정된 공모 기준에 미흡한데도 선발된 경위에도 의문이 간다. 얼마나 필진을 구하기 어려웠으면 자격이 미달되는 사람을 선정했을까 싶다. 국편은 지난달 집필진 구성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계의 명망 높은 전문가로 집필진을 선정했다”고 호언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머지 집필진에 김 교사와 같은 자격 미달자가 더 없다고 장담하기도 어렵게 됐다.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인 정부로서는 최상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공정한 집필 기준과 전문성이 충분한 집필자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려면 집필진에 대한 투명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어차피 남은 집필진도 김 교사처럼 언젠가 경력이 밝혀지게 마련이다. 과거 교학사 교과서처럼 무수한 오류와 편향투성이의 책이 나오기 전에 지금이라도 집필진을 공개하는 것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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