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경성 기자

등록 : 2017.09.14 17:35
수정 : 2017.09.14 20:26

제재 이틀 만에… 정부 “대북 지원” 엇박자

등록 : 2017.09.14 17:35
수정 : 2017.09.14 20:26

국제기구에 800만달러 공여 추진

“정치와 별개 인도적 차원” 불구

국제사회 대북 압박 시기 논란

“관계 복원 위한 역발상” 해석도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 세계식량계획(WFP) 홈페이지 캡처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한다. ‘인도주의와 정치는 별개’라는 원칙론이 배경이란 설명이지만 제재 국면을 남북 관계 복원의 단초로 삼겠다는 역발상이기도 하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채택한 지 불과 이틀 만이어서 국제적 압박 기조를 해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4일 기자들에게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요청으로 북한의 모자보건 사업에 800만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21일 예정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장관이 위원장인 교류협력추진협의회는 남북 교류ㆍ협력 사업들을 총괄 조정하는 차관급 협의체다.

정부는 WFP의 아동ㆍ임산부 대상 영양 강화 사업에 450만달러, 유니세프의 아동ㆍ임산부 대상 백신과 필수 의약품,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에 350만달러를 각각 공여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원안이 협의회를 통과하면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단됐던 국제적 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이 2년 만에 재개된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제기구 요청을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영유아 영양실조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며 대북 지원 필요성을 언급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의 잇단 도발에 국제사회가 강경한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굳이 대북 지원 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판론이 일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과연 시기가 지금이어야 하는가 의문”이라고 지적했고,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탈 조짐을 보이는 진보 지지층을 단속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이지만 메시지 일관성이 떨어져 정부를 못 믿겠다는 여론도 비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사회도 즉각 반응했다. 이날 우리 정부의 대북 지원 방안이 공개되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브리핑에서 “국제사회 전체가 최대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를 훼손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고 못마땅해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내외의 비판론을 의식한 듯 “대북 정서 등을 감안했지만 북핵과 인도주의 트랙이 별개고 독자적 지원도 아니어서 재개를 결정했다”며 “미국 등에는 미리 지원 방침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역발상을 통해 제재 분위기를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제재 측면으로만 접근하는 미일과 동포로서의 인도주의와 향후 남북 관계 복원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도 “제재와 별개로 인도주의 지원은 재개돼야 한다”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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