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들어온 차… 시세의 1/3"
인터넷 사이트에 온갖 사탕발림
연 300~500건 소비자 민원
일부 악덕 딜러 제 몫 챙기려 바가지
상사는 돈벌이 위해 단속 팔짱
지난 3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광고에 기아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랑(SUV)인 검은색 모하비 중고차가 올라왔다. 중고차 시세가 2,600만원 정도인데 매물은 558만원으로 4분의 1 가격이다.
여성 상담원과 통화 후 서둘러 부천의 중고차 매매단지로 달려갔다. 30대 남성이 나와 기자를 맞았다. 그는 “인터넷에서 본 차량이 5분 거리에 있으니 차에 타라”고 했다.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비슷한 연식의 다른 차량을 보여주겠다며 안내했다.
주차 타워 2층에 검은색 모하비가 서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싸게 파느냐”고 물었더니 남성은 “경매로 들어와 그렇다”며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모하비가 딱 두 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차량 가격에 등록비 10%(55만8,000원), 딜러 수수료 30만원을 합쳐 643만8,000원만 내면 추가 금액 없이 차를 가져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또다른 포털사이트에 인천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1년 5개월 된 현대자동차의 SUV 싼타페 DM을 990만원에 판다는 광고가 올라왔다. 이곳에서도 전화 상담원 대신 체격 좋은 남성이 안내를 맡았다.
10분 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인천 남동구의 중고차 매매단지였다. 남성은 차를 보여주고 도저히 살 수 없는 구실을 댔다. 그는 “현대차 연구소에서 운행하던 차여서 정식 등록이 되지 않아 사후관리(AS)를 받을 수 없다”며 다른 차를 소개했다.
그는 시트 비닐커버도 벗기지 않은 흰색 싼타페 새 차를 보여주며 “오늘 들어온 차인데 1,000만원”이라고 소개했다. 싼타페 2.0 2륜 구동 익스클루시브 신차 가격이 3,198만원이니, 3분의 1 가격이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정확한 유통경로는 영업비밀이라 말할 수 없지만 인천 중고차매매조합이 직접 차를 매입해 저렴하게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3분의 1 가격에 나온 미끼 중고차들
기자가 이틀 동안 수도권 매매단지에서 확인한 중고차 5대 가격은 모두 시세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전문업체 등에 알아보니 아무리 경매로 매입을 해도 시세의 3분의 1 가격에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지역 중고차매매조합은 직접 차량을 매입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
결국 이 차량들은 모두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다. 만약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보이면 새로운 판매 딜러가 등장해 사기극이 시작된다. 계약서에 차량 가격을 적지 않고 먼저 서명을 받은 뒤 시세보다도 높은 가격을 써넣는다. 만약 계약서에 몰래 높은 가격을 적었다가 발각 되면 차량 관리비, 수수료 등 갖은 명목을 붙여 돈을 뜯어낸다. 그러면서 “안내 받은 가격은 계약금”이라거나 “이야기한 가격은 경매 시작 가격이고 낙찰을 받으려면 돈이 더 든다”는 뻔한 핑계를 댄다.
이렇다 보니 중고차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민원이 연 300~500건에 이를 만큼 많다. 중고차 시장이 이처럼 복마전이 된 이유는 일부 판매 알선 딜러들과 매매상사 등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갑과 을이 바뀐 판매 딜러와 매매상사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만나는 딜러는 중고차를 매입만 하거나 매입 후 직접 판매까지 하는 형태, 매입은 하지 않고 다른 매매 딜러나 매매상사의 중고차를 판매 알선만 하는 형태로 나뉜다. 문제는 판매 알선만 하는 딜러들에게서 주로 발생한다.
판매 알선만 하는 딜러는 직접 매입해서 파는 딜러보다 챙길 수 있는 돈이 적다. 때문에 이들은 허위ㆍ미끼 매물을 내세워 소비자를 유혹하거나 임의로 수수료를 챙기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불량 판매 딜러를 솎아내기란 쉽지 않다. 판매 딜러는 중고차 매매상사에 소속돼야 영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에서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매매차익 일부를 상사에 준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1건 매매 시 딜러가 15만원 안팎을 매매상사에 준다”고 설명했다.
매매상사 입장에서는 매매 딜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렇다 보니 을이 되는 상사가 갑에 해당하는 딜러를 교육하거나 불량 판매 딜러를 솎아내기 힘들다.
관련 법도 중고차 매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매매상사에게만 묻는다. 문제가 커지면 개인사업자 격인 매매 딜러는 다른 매매상사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중고차 매매업계 관계자는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불량 판매 딜러 문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불량 매매상사도 문제다. 판매 알선만 전문으로 하는 매매상사 중에 허위, 미끼 매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포털사이트에 유료 광고를 하는 곳들이 다수 있다. 이들은 광고 대행 명목으로 판매 딜러들에게 매일 일정 금액을 요구한다. 소속 딜러들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바가지라도 씌워야 할 판국이다.
불량 매매상사와 판매 딜러를 퇴출시킬 권한은 매매상사들로 구성된 시ㆍ도 단위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에 있다. 그러나 일부 조합은 이익 추구를 위해 소비자들의 피해를 거의 방치하고 있다. 결국 시장의 잘못된 구조가 소비자들의 피해를 부르는 셈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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