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처럼 정치적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가 대한민국 뉴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때가 또 있을까 싶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된 ‘국정농단’ 사태는 그 후 검찰의 본격적 수사와 기소,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의결 및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 개시, 특별검사의 수사를 거치면서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이 사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司法)화’는 사실 어느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종래 비정상적 힘의 논리에 의해 비공식적 방법으로 해결되던 정치적 사안들이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그 정치과정을 통해 해결되지 못한 사안들이 사법부의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헌법재판소에 의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사건과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법률심판사건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본격적으로 경험하였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회에서의 정치 과정과 사법부에 의한 사법적 판단의 상호작용은 몽테스키외 등의 전통적 권력분립 원리에 따른 이론적 설명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 과정에서 정치의 영역과 사법 권력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인식하게 된 각 권력주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혹은 사법적 결정이 사법적 판단 혹은 정치적 반응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고 변화할 것인가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나아가서 정치의 영역과 사법부는 서로가 상대방의 의사결정에 자신들의 선호를 반영하려는 유인을 가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의 사법화의 영향력을 인식한 정치권력이 사법부의 판단을 자신들의 정치적 선호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유도하려고 노력하는 이른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사법의 정치화는 여론을 통한 사법부 판단에 대한 압박, 정치권력을 사용한 사법부 구성원의 교체, 의회가 사법부에 대해 가지는 조직구성권한과 예산편성권한의 사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살아있는 정치권력과 사법부는 때로는 서로 긴장관계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동조화하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적 사건들의 사법적 처리과정은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과정에 대한 입체적 이해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며칠 사이에 정치권력과 국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장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분노 혹은 응원의 감정을 표현하였고, 그 결정을 담당한 판사들의 프로필과 정치적 선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법부 구성원의 정치적 선호에 대한 대중의 이러한 관심과 평가는 헌법재판소의 최종적 탄핵심판결정이 이루어지는 날에 그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도 민주주의와 사법시스템 발전의 한 과정이고 그 사회의 전반적 성숙도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몇 건의 사법부의 판단을 두고 우리 사회 일부 구성원에 의해 이루어진 담당 판사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근거 없는 허위사실의 유포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본격적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과정이 작동하기에는 사법부 구성원의 선발과 사법권력의 작동과정이 민주주의 관점에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정치적 혼란과 위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경향은 보다 가속해서 진행할 것이다. 부디 지금의 위기가 대한민국이 보다 선진화한 정치제도와 사법제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기회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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