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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9년 만에 총선, 정치적 냉소 속 투표율 50% 못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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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9년 만에 총선, 정치적 냉소 속 투표율 50% 못 미쳐

입력
2018.05.07 17:5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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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세력 과반 의석 전망

“이란 영향력 확대될 듯” 시각

6일 레바논 의회 총선이 9년 만에 실시된 가운데, 사드 하리리 현 총리가 수도 베이루트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잉크가 찍힌 자신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베이루트=로이터 연합뉴스
6일 레바논 의회 총선이 9년 만에 실시된 가운데, 사드 하리리 현 총리가 수도 베이루트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잉크가 찍힌 자신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베이루트=로이터 연합뉴스

“똑 같은 얼굴들이 의회로 돌아갈 게 뻔해 투표하지 않았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택시 기사는 6일(현지시간) 치러진 의회 총선에서 아무에게도 한 표를 던지지 않은 이유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이 같이 설명했다. 그는 “우리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표를 얻고 나면 금세 모습을 감출 것”이라며 “투표보다는 그냥 내 일이나 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2009년 이후 무려 9년 만의 총선이었음을 감안하면, 다소 지나친 정치적 냉소라 할 만하다.

중동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무대 중 한 곳인 레바논의 이날 총선에서 유권자의 참여 열기는 예상 외로 미지근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잠정집계 결과 투표율은 49.2%에 불과했다. 2009년 총선의 5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투표권을 포기한 것이다. 당초 2013년 계획됐던 총선이 시리아 내전에 따른 안보 위기 등을 이유로 5년이나 미뤄지다 실시됐는데도 뜻밖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외신들은 이에 대해 “유권자 사이에 회의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만연한 부패와 경제위기 심화, 공공서비스 약화 등이 선거 쟁점이었지만, 시리아 내전과 미국의 이라크 개입,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등 중동 지역 현안이 크게 대두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레바논인들은 총선 결과가 ‘지역 사안’에 좌우되는 기존 정치질서를 바꿀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WP도 “유권자들은 변화를 바라면서도 거의 기대하지 않으며 투표장으로 향했다”며 “레바논의 단기 전망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다”라고 내다봤다.

이번 총선은 지난해 6월 레바논의 각 정파가 선거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치러졌다. 1990년 내전 종식 이후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의석을 균등 배정하고, 각 교파 별로 의석을 재배분하는 종파별 의석 쿼터제를 시행 중인데, 새 선거법은 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승자독식제를 폐지하고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사우디와 이란에 휘둘리며 민생을 등한시했던 정치 엘리트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유권자의 불신이 ‘투표율 저조’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총선 결과가 레바논 앞날에 무의미한 건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과 시아파의 후원을 받는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연계된 개인 또는 정당이 전체 128석 중 최소 67석을 확보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다만 총리직은 수니파가 맡기로 한 현행법상, ‘친(親)사우디’ 성향 정당인 미래운동(FM)을 이끄는 사드 하리리 현 총리가 계속 유지할 전망이다. 통신은 “헤즈볼라의 정치적 입지 확대는 레바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이며, 미국의 경계심도 일깨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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