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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사전] 먹방

입력
2015.07.0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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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요즘 한국 인터넷 실시간 개인방송의 주된 장르 포맷이다. 다른 장르로는 겜방(게임 방송), 음방(음악 방송), 공방(공부 방송), 여캠(여성 진행자 방송) 등이 있다. 먹방은 소재의 공통점이라는 점에서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의 쿡방과 맞꼭지각을 이루고, 시청자들의 세대차라는 점에서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와 엇각을 이룬다. 미국의 인터넷 실시간 개인방송 ‘유스트림’에는 먹방 장르가 없다.

인터넷 개인방송인을 BJ(브로드캐스팅 디제이)라고 하는데 먹방의 재미는 BJ가 요리하고 먹는 것을 보고 즐기는 것에서뿐만이 아니라 네티즌 시청자들이 실시간 대화창을 통해서 BJ와, 그리고 다른 시청자들과 채팅을 하면서 장난하고 노는 데서 생겨난다. 그저 먹는 거와 먹방에 접속하는 것의 차이는 단지 노래를 듣는 것과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 사이의 차이와 유사하다. 그런데 먹방은 리얼리티 비디오 쇼가 스트리밍되는 것이어서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즐기면서 상호작용하는 인터넷 게임의 성격도 갖는다.

먹방이 갖는 로우컬한 특징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다른 한국적 특징들로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 전체를 통해서 마치 수능 성적 결과처럼 먹방들 사이의 순위가 매겨진다는 것이고 또 네티즌 시청자들이 돈을 선물로 BJ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 시청자들은 한 개에 100원짜리인 이모티콘들을 사서 대화창에 선물로 남긴다. 십시일반의 원리를 티끌 모아 태산 수준으로 확장시킨 결과 매월 수천만원을 버는 BJ들도 생겨났다. 한 번에 수십만원씩에서 때로는 수백만원까지를 선물하는 네티즌도 가끔은 있다. 외국의 유튜브 시청자들은 한국의 BJ들이 ‘처묵처묵’으로 돈 버는 것을 보고는 경악한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란 그가 먹는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여기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인류학적이고 에스닉한 습성까지를 더해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먹방이 유행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사이버공간에 이렇듯 엄청나게 시끌벅쩍한 먹자골목이 형성된 것은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외심증(외롭심심증)’ 때문일 것이다. 사망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감염률은 거의 100%에 육박하는, 한국 사람들의 외심증을 먹방이 치료하고 있는 중이다. 포이어바흐에 기대서 말한다면, 인간이란 바로 그가 접속하는 것이다.

나는 육식주의자, 그러니까 철저한 돼지터리언이지만 먹방은 보지 않는다. 먹방이 소위 푸드 포르노라서 그런 것 때문은 결코 아니다. 내가 보기에 먹방 콘텐츠는 포르노라기보다는 하드고어 코미디에 가깝다. 단지 먹는 것에 관한 한, 나는 ‘대리랭’이 싫은 것이다. 대리랭이란 게임에서 다른 사람에게 대신 플레이를 시킴으로써 랭크를 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먹방 BJ들은 구어적이고 일상적인 친밀감과 재치 넘치는 예능감을 매일 밤 실시간으로 뽐낸다. 하지만 그건 결국 먹는 것에 관한 노출증 및 관음증으로 이루어진 가벼운 스낵 콘텐츠에 불과하다. 먹방 콘텐츠라는 것이 어머니가 차려준 가정식 백반 자체, 아니면 한 걸음 양보해서 자정 넘어 꼭 끓여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라면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내 세대는 이미 1960년대에 다큐 영화 ‘몬도가네’를 보며 즐긴 적이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 트렌드는 ‘웰빙-정의-힐링-먹는 거’로 흘러왔다. 조금 살만해지니까 모든 사람이 웰빙에 몰리게 되었고, 웰빙에는 시간과 돈이 드는데 빈익빈 부익부는 더 심해지므로 정의에 주목하게 되었고, 정의란 본디 근본적인 사회 변혁에 의해서만 가능하니까 피로사회에서 생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려고 했고, 힐링이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자 이제 ‘먹는 게 남는 거’라는 아주 익숙한 통찰로 되돌아 온 것이다.

먹는 거 다음의 트렌드는 뭐냐고? 그거야 당연히 뭔가 영적이고 종교적인 로맨스나 혹은 우주여행 등과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나꿍꼬또 기싱꿍꼬또(나 꿈꿨어 귀신 꿈꿨어)”와 같은 유행어는 바로 그런 트렌드의 함축적이고도 예감적인 단서일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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