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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은 왜 공범을 등졌나… 인천 초등생 사건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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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은 왜 공범을 등졌나… 인천 초등생 사건의 재구성

입력
2017.10.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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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 김양, 검찰서 우호적 태도 거둬

6월 재판에선 “살인 지시 받아” 진술

발 빼려는 공범에 실망해 돌아선 듯

공범 박양, 심리적 부담에 대질도 거부

재판부 “주범 앞서 허위 진술 부담” 판단

지난 4월 1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는 인천 초등생 사건의 공범 박모(오른쪽 사진 가운데)양과 3월 30일 유치장으로 이동하는 주범 김모양. 연합뉴스
지난 4월 1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는 인천 초등생 사건의 공범 박모(오른쪽 사진 가운데)양과 3월 30일 유치장으로 이동하는 주범 김모양. 연합뉴스

8살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한 사건의 주범은 수사기관에서 공범을 감쌌다.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고 경찰과 검찰 추궁에도 공범과 사건의 관련성을 최대한 배제했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뒤 “공범이 먼저 사람을 죽여달라고 했다”고 태도를 180도 바꿨다. 사건 발생 87일만이었다. 징후는 있었다.

지난달 22일 1심에서 주범과 공범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이라는 법정 최고형이 선고된 인천 초등생 사건을 범행 직후부터 검찰 수사 결과와 1심 판결문을 토대로 재구성해봤다.

주범 김모(17)양은 3월 30일 0시 40분쯤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인천 연수구 자신의 집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 A양을 목 졸라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뒤로부터 약 1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양은 수사 초반 범행의 계획성과 공범 박모(18)양과 사건의 연관성을 최대한 부인하면서 박양을 보호했다. 김양은 4월 4일 경찰의 세번째 피의자 신문 때까지 범행 당일 박양을 만나 A양의 시신 일부를 건넨 사실을 숨겼다. 경찰은 연관성을 의심해 추궁했으나 방어하는 진술 태도는 유지됐다.

김양은 체포된 직후 휴대폰을 빼앗기기 전 박양이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얽힐 일은 없나요?’라고 메시지로 묻자 ‘없도록 할게, 장담은 못하지만 깊이 엮이진 않을 거야’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4월 5일과 6일 피의자 신문 때도 박양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는 이어졌다. 김양은 다중인격임을 주장해 수사에 혼선을 주면서 “사건 당일 박양을 만나 시신 일부를 건네줬는데, 박양은 건네 받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검찰로 넘어와서도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박양이 구속된 4월 13일 검찰의 세번째 피의자 신문 때부터 변화가 감지됐다. 김양은 당시 “박양에게 피해가 덜 가는 방향으로 해주고 싶었지만, 박양의 진술은 저에게만 다 미루고 있는 꼴이기에 지금은 박양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4월 10일 사체유기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된 뒤부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박양의 태도를 검찰로부터 전해 듣고 실망해 적극적으로 진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김양은 4월 17일 검찰의 네번째 피의자 신문 때는 “시신 일부를 모형으로 알았다”는 박양의 진술은 거짓이고 사건 며칠 전 박양이 시신 일부를 달라고 하면서 소장하겠다고 한 사실도 밝혔다. 4월 19일 박양과의 대질조사 당시 김양은 범행 전 박양과 주고 받은 “사냥을 나간다” 등 계획 범죄임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검찰은 5월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ㆍ유인 후 살인 등 혐의로 김양을 구속 기소했다. 앞서 5월 8일에는 살인방조 등 혐의로 박양을 재판에 넘겼다.

김양의 폭탄 발언은 6월 23일 박양의 첫번째 공판기일에 나왔다. 증인으로 출석해 박양이 여러 차례에 걸쳐 살인을 격려하고 부추겼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이다. 당시 김양은 “(범행 이후)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네가 책임지라’고 얘기해 서운했다”고 말했다. 7월 12일 김양의 두번째 공판 때는 김양과 박양이 스킨십을 하고 계약연애를 한 사이였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김양의 진술이 점점 박양을 살인의 공모공동정범으로 지목한 것과 달리 박양은 법정에 이르기까지 김양과의 범행 공모는 물론 김양의 살인 범행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부인했다. 범행 관련 대화를 나눈 사실은 인정했으나 역할극 내지는 가상상황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양은 진술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경찰에 긴급 체포되기 전인 4월 4일 참고인 조사 당시 “시신 일부를 가져다 줄까”라는 김양의 질문에 특정 신체 부위를 얘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나 다음날 “기억나지 않는다”고 번복했다. 4월 10일과 14일 경찰 피의자 신문 때는 “가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또 다시 말을 바꿨다. 대질조사 때 김양이 “실제 신체 일부를 염두에 두고 한 대화”라고 진술하자 대답을 못하다가 4월 24일 검찰에서 “실제 신체 일부로 인식한 것은 맞지만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번복했다.

훼손된 시신 일부가 담긴 봉투를 건네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4월 4일 경찰 참고인 조사 때 “확인하지 않고 버렸다”고 진술했다가 김양이 특정 신체 부위를 언급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모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을 바꿨다. 박양은 이후에도 봉투 내용물을 확인했는지, 특정 신체 부위라고 인식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 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박양은 김양과의 통화내역 등을 근거로 살인 범행 등에 대한 집중적인 추궁이 이뤄진 4월 18일 경찰의 피의자 신문 당시 대질조사 가능성이 언급되자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양) 얼굴을 봤을 때 침착하게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고, 또 김양이 한 얘기를 그저 판타지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심적으로 그런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박양의 진술 형태와 번복 경위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이는 결국 사건의 계획성 내지 공모관계와 같은 이해관계를 함께 하고 있는 김양의 앞에서 허위로 진술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박양의 살인방조죄는 재판 중 살인죄로 변경됐고, 재판부는 김양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박양이 범행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혐의를 모두 인정해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김양과 박양은 최근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들은 항소심에서 1심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들을 주장을 다시 강조하며 형량을 줄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김양은 심신 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주장했으며 박양은 사체유기 혐의는 인정하면서 살인 혐의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항소심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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