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총선 심판에도 당권잡아
“비박 결집 움직임에 위기감, 막판엔 靑이 이정현 지지”說
靑 입김 계속 땐 비박 불만 폭발…대선후보 조기경선 주장 가능성
반기문 당내 입지 넓어질듯
이정현 신임 새누리당 대표는 ‘영남당’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새누리당에서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수장에 선출되는 역사를 썼다. 그러나 ‘도로 친박당’이라는 내외부의 부정적 평가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하는 과제를 시작부터 안게 됐다. 특히 친박계의 지원으로 당선되면서 당내 비박계와의 계파 갈등이 심화하고 당청관계도 과거와 같은 수직적 관계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넘어야 할 산이다.
비록 당선 일성으로 계파 종식을 선언했지만 이 대표는 네 명의 당 대표 후보 중 가장 친박 색채가 강한 인물이었다. 거기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5명 중 4명을 친박계가 싹쓸이하면서 지도부가 친박 일성으로 채워지게 됐다. 총선 참패 이후 당 안팎에서 거세게 인 ‘친박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나온 이런 결과에 대해 당내에선 비박계의 두 차례에 걸친 후보 단일화, 김무성 전 대표의 지원사격에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가 결집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여권 관계자는 “비박계의 눈에 보이는 결속 움직임에 친박계가 위기감을 느낀 결과”라며 “‘그래도 이정현은 대통령을 보호할 사람’이라는 친박 정서가 통했다”고 분석했다. (▶ 이정현 신임 당 대표, 누구인가)
물론 이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을 거치고 여당의 불모지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쌓은 높은 인지도도 무시 못할 강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30%의 비율로 합산되는 여론조사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집권 후반 박근혜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친박이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가 더 통했다. 한 친박 의원은 “이 후보를 ‘믿을 만한 친박’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주호영 후보가 당선되면 비주류인 비박계가 청와대를 계속 공격할 게 뻔해 이 후보를 밀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심은 친박 당 대표를 만들었지만 당 혁신과 당청관계 재정립에 대해서는 우려가 많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당에서 청와대나 주류를 견제할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며 “최고위원까지 친박계가 대거 당선되면서 역대 가장 강력한 ‘친박 지도부’가 탄생해 발전적 당청관계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당 운영이 여전히 청와대나 친박계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경우엔 비박계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계파 갈등이 폭발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럴 바엔 조기에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자는 주장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비박계의 한 의원은 “총선이 끝나 공천이 걸려 있지 않으니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는 데다 새 당 대표에게 기대할 게 없다면 대선 후보를 빨리 확정해 그를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하자는 주장이 빗발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가 당권을 거머쥐면서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당내 입지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친박계는 자신들이 대거 지원해 세운 이 대표를 통해 반 총장 등 자신들이 미는 인물을 대선주자로 만들기 위해 적극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전대에서 비박계가 맥없이 무너지며 비박계 지원에 나섰던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와 함께 이 대표가 한때 ‘박 대통령의 입’으로 불릴 정도의 측근이었던 만큼 향후 대야 협상에서도 여당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야당 쪽에서 나오고 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