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작가 낙인, 1988년 해금 전까지 지워진 화가
일제강점 어두운 시대, 현실 직시하면서 희망을 화폭에 담아
타계 50주년 회고전, 작품 41점 外에 스케치·서신 등 공개
한국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서양 중절모를 썼다. 동양식 모필(毛筆)과 서양의 팔레트를 들었다. 근대 서양화가 이쾌대(1913~1965)가 해방 후 그린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서구 미술을 배우면서도 동양적인 미를 추구하려 시도했던 젊은 작가의 복잡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림 속 결연한 눈빛과 붓을 쥔 강인한 손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화가의 역할에 대한 자의식이 엿보인다.
타계 50주년을 맞은 이쾌대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11월 1일까지 서울 정동 덕수궁 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전쟁 휴전 후 남북포로 교환 때 북한을 선택한 이쾌대는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 남한에서는 언급이 금지된 ‘잃어버린’ 작가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월북 이전까지 25년간 남긴 그의 작품들은 한국 근대 사실주의 미술의 중요한 이정표다. 이쾌대는 해방 전후의 암울한 시기를 살면서 늘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고 희망 섞인 그림을 그렸다.
경북 칠곡군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이쾌대는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고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회화를 배웠다. 당시 일본 화단에서 활동하던 조선 유학생들의 주류 흐름은 조선의 목가적인 농촌 문화를 낭만적인 색채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쾌대는 조선의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미술학교를 졸업한 해에 그린 ‘운명’(1938)은 어두운 색채로 방바닥에 누운 한 남성 옆에 비탄에 잠긴 네 명의 조선 여인들을 그리고 있다. 이 여성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감싸며 운명에 짓눌린 삶을 드러내지만 홀로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초연한 표정이다. 바로 여기에 이쾌대 그림의 힘이 있다. 어두운 시대를 직시하는 동시에 이를 돌파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이쾌대는 일본 유학 때부터 함께 살았던 아내 유갑봉에게서 주체성을 지닌 당당한 여성상을 발견하고 항상 여성이 주인공인 인물화를 그렸다. 제국미술학교 졸업작품으로 그린 ‘무희의 휴식’(1937)에서도 조선의 전통 궁중무복을 입은 주인공 무희는 결연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이쾌대의 그림 속 여성들은 어두운 시대를 돌파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해방 이후 1948년부터 이쾌대는 ‘군상’연작을 그리며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군상’ 4점은 각각 가로 2.2m, 세로 1.8m 크기의 서사성 강한 대형 회화들이다. 발가벗겨진 채 쓰러져 있는 조선인들 사이로 해방의 소식을 알리는 서광이 비치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렬한 필치로 묘사돼 있다. 일제 강점이 남긴 상처와 해방 직후의 혼란을 딛고 일어서는 힘찬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1953년 이후 이쾌대가 북한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유갑봉은 다락방 안에 숨겨둔 남편의 작품을 끝끝내 지켜냈고 이들 작품은 1991년 신세계미술관 전시를 통해 빛을 봤다. 이쾌대의 작품 41점 외에 유족들이 보관해 온 작품 스케치 150점, 가족 및 동료 화가와 교환한 서신, 전시회 안내문과 방명록 등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1947년부터 이쾌대가 운영했던 근대미술교육기관 성북회화연구소의 사진자료와 당시 제자였던 김창열, 전뢰진 등의 회고 인터뷰도 볼 수 있다. (02)2022-06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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