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진 시간차로 대기실 이동, 화장실 갈땐 경호원 따라붙어
매니저도 마스크·선글라스 착용
기상천외한 이름 짓기는 제작진·가면 제작자 공동 작업
녹화 당일까지 개명 거듭, 상암동 호루라기 최고가 50만원
“사랑해 널 사랑해 목이 메여 불러도~”. 맑은 목소리가 ‘사랑… 그 놈’의 쓸쓸함에 새 옷을 입혔다. 원곡 가수 바비킴이 아니다. 가면을 쓰고 노래해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다. 누굴까?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이 전파를 타면 제작진과 시청자의 ‘밀당’은 시작된다. 제작진은 기상천외한 가면으로 출연자의 정체를 숨기고, 시청자는 출연자의 목 아래 점까지 찾아내며 ‘신상 털기’에 나선다. 탐정놀이에 빠진 시청자의 관심은 뜨겁다. 4월부터 정규 편성된 ‘복면가왕’은 평균 1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요일 주말 예능의 새 강자로 떠올랐다. 가면 이름은 누가 지을까? 출연자끼리 진짜 모를까? 그래서 준비했다. ‘복면가왕’ 탐구생활.
‘007 작전’ 방불케 하는 특급 보안
‘복면가왕’의 생명은 보안이다. 출연자 정보가 노출되면 아예 무대에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보안 노력은 눈물겹다. ‘복면가왕’ 출연자들은 방송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부터 가면을 쓰고 대기실로 이동한다. 방송사에 오는 시간도 조정한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이란 이름으로 출연한 그룹 비투비 멤버 육성재 관계자는 “차에서 내려 대기실로 이동하는 사이 출연자들이나 매니저들끼리 서로 만날까 봐 ‘몇 분 후 입장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고주파 쌍더듬이’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섰던 에일리 측은 “대기실에서 소속사 직원들을 보면 누가 출연하는지 알 수 있다며 회사 본부장이나 대표 등은 녹화장에 오지 말라고 부탁하더라”고 말했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매니저들도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 출연자들은 화장실 갈 때도 가면을 쓴다. 이 때 경호원이 반드시 동행한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A씨는 “화장실 안에서 출연자끼리 마주치지 않게 경호원이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누가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볼 일을 본다. 경호가 아니라 감시”라며 웃었다.
출연자들은 물론 녹화 사실을 알려서도 안 된다. ‘감전주의 액션로봇’ 가면을 썼던 개그맨 정철규는 “‘복면가왕’ 녹화 후 입었던 옷 그대로 행사에 갔다가 팬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절대 인터넷에 사진 올리지 말아달라’고 거듭 부탁했다”며 “주위에는 ‘라디오스타’ 녹화했다고 했다”며 웃었다.
제작진은 ‘함정’도 판다. ‘미스터리 도장신부’를 쓰고 무대에 선 백청강은 여자로 가장해 하이힐을 신고 브래지어까지 했다. 백청강은 “여장을 하니 경호원이 여자화장실로 안내하더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정철규는 아이돌처럼 보이려 네일아트를 했다. 출연자들을 위해 강남에 마련한 노래 연습실은 주변에 뮤지컬 연습장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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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 가면 50만원짜리까지
‘황금락카 두통썼네’ ‘로맨틱 쌍다이아’….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가장 주목 받는 건 바로 가면 이름이다. ‘복면가왕’ 연출자인 민철기 PD는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가면에 맞춰 별명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고, 엉뚱한 별명으로 웃음을 주고 싶었다”며 “제작진과 가면 제작자가 의견을 나누며 이름을 짓는다”고 말했다. 녹화 당일까지 바꿀 정도로 공을 들이는 게 바로 가면 이름 짓기다.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었던 가면은 도금작업까지 했던 그룹 블락비 멤버 태일의 ‘상암동 호루라기’(50만원)다. 28개의 가면을 제작한 디자이너 타코 씨는 “가장 어려웠던 가면은 플라스틱 소재에 LED 전구를 단 ‘감전주의 액션로봇’이었다”며 “‘황금락카 두통 썼네’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사포질하고 세 번이나 락카를 칠했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룹 장미여관 육중완은 얼굴에 가면이 맞지 않아 두 번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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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SBS PD 10여명이 거절” 3년 표류
“3년 동안 까였다.” ‘복면가왕’을 기획한 박원우 작가는 ‘블랙맨’(가제)이란 기획안을 들고 KBS SBS 등 방송사 PD 10여명을 찾았으나 퇴짜를 맞았다. “누가 얼굴 가리고 노래하겠어?” “가면 쓴다고 누군지 모르겠어?” 등 거절 사유도 여러가지였다. 박 작가가 제작을 포기할 때쯤 만난 게 민 PD다. 민 PD는 “‘개그야’ ‘웃고 또 웃고’ 등 코미디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해 코미디에 애착이 큰데 ‘복면가왕’ 기획안을 보니 유머가 느껴졌다”며 “코미디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제작했다”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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