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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도, TV서도, 칼럼서도 핫이슈… 집밥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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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도, TV서도, 칼럼서도 핫이슈… 집밥이 뭐길래

입력
2015.07.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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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잦은 사회구조 속 자극적이고 무거운 메뉴 대신

소박한 '엄마표 밥상' 각광, 집밥식당도 곳곳에 생겨나

집밥 차리는 우리 시대 엄마들은 "소울푸드 맞지만 만들기 힘들다"

간편하게 다양한 음식 만드는 백종원의 레시피에 빠져들어

시대의 화두가 된 집밥. 엄마가 차려 주던 이 소박한 밥상이 이제는 가장 인기 있는 외식메뉴가 되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대의 화두가 된 집밥. 엄마가 차려 주던 이 소박한 밥상이 이제는 가장 인기 있는 외식메뉴가 되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집밥’이 인기를 넘어, 대세를 지나, 논쟁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가 된 음식에 백종원이라는 가공할 ‘푸드 엔터테이너’의 등장까지, ‘집밥’은 이제 인기 있는 외식메뉴라는 흥미로운 아이러니에서 사회ㆍ문화적 담론의 대상으로 지위가 변모했다. 설탕 팍팍 친 단순 레시피로 주부들을 사로잡은 백종원씨가 ‘집밥 선생’으로 불리는 게 온당한가, 백종원 열풍의 원인이 “맞벌이 탓에 엄마의 사랑을 받아먹은 기억이 없는 20ㆍ30대의 결핍” 때문이라고 쓴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분석은 타당한가, 집밥의 낭만화는 타파해야 할 모성신화에 기반한 여성억압기제 아닌가, 그런데 즐비한 저 집밥식당의 음식들은 정녕 엄마가 해주던 집밥의 그 맛이긴 한가…, 의문이 줄을 잇는다.

모두가 찬미하고,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집밥. 우리의 뇌 내에서 엄마밥이라고 자동 변환되는 그 밥은 어떻게 식문화의 최첨단 트렌드가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집밥을 차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전업주부와 워킹맘들에게 물었다. 미식의 시대, 집밥이란 과연 무엇인가.

● 가장 인기 있는 외식메뉴가 ‘집밥’

15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한 백화점의 식당가에 입점한 집밥식당. 채 12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집밥과 식당이라는 반의어가 결합한 이 새로운 유형의 식당들은 지난해부터 외식업계의 핵심이슈였다. 1인 가구의 증가, 여성의 사회진출, 야근의 일상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아이들의 학원 순례…. 외식이 식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오늘날의 사회 구조는 자극적이고 무거운 외식 메뉴 대신 소박한 집밥으로 더부룩한 속을 달래고 싶은 미각의 욕구를 분출시켰다.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차려주시던 엄마의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을 표방한 식당들이 폭발하듯 곳곳에 생겨났다. 강남 신사동의 쌀가게 바이 홍신애, 양출쿠킹, 청담동의 정지이, 한남동의 빠르크, 성북동의 무명식당 등이 대표적.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곳곳에 분점까지 낸 곳이 대부분이다.

집밥식당들의 메뉴는 백반집과 비교할 때 매우 단출하다. 매일 바뀌는 계절 밑반찬 두세 가지에 메인 요리 하나, 밥과 국을 1인용 트레이에 차려낸다. 호박무침, 멸치볶음, 가지무침, 깻잎장아찌 등 그야말로 집에서나 먹을 수 있던 밑반찬들에 계절에 따라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불고기, 돼지고기 두루치기, 황태구이, 더덕무침 등을 메인요리로 내놓는다. 화학조미료는 쓰지 않고, 밥에 공을 들여 현미밥, 흑미밥, 5분도미밥 등으로 상을 차린다. 밑반찬들은 매번 바뀌고, 엄마 밥상처럼 메뉴판 없이 정해진 음식을 내오는 곳이 많다. 가격은 1만원에서 1만5,000원선. 초창기에는 이런 ‘차린 것 없는’ 밥 한끼가 1만원이 넘는 데 분노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고급화를 지향하는 식문화 전반의 트렌드에 따라 이제는 자연스런 수용단계에 이르렀다.

맛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린다. 혼자 자취생활을 하는 직장인 이주영(33)씨는 “집밥식당이 없었으면 1년 가야 먹어볼 일이 없는 밑반찬과 채소를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즐겨 찾는다”며 “언제 지은 건지도 모를 공기밥 대신 정성 들여 지은 맛있는 잡곡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몇 군데 식당에서 직접 먹어본 집밥은 심심한 맛을 지향했을 뿐 인공적인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상차림의 구성이 집밥스럽달 뿐이지 맛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게 왜 집밥인가 싶은 음식들이 많았다. 집밥식당의 주고객층은 그래서 20ㆍ30대의 학생들과 직장인, 외식은 하고 싶지만 양식은 즐기지 않는 50ㆍ60대로 양극화돼 있다.

집밥식당 빠르크의 상차림. 오징어볶음과 밑반찬 세 가지에 1만2,500원이다.
집밥식당 빠르크의 상차림. 오징어볶음과 밑반찬 세 가지에 1만2,500원이다.

● 엄마 음식이 꼭 맛있는 건 아니다

엄마밥을 맛의 원형으로 숭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든 엄마들이 다 요리를 잘 하는 건 아니다. 자식들도 미뢰가 있으니,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낄 수는 없는 법. 워킹맘 김선혜(가명ㆍ40)씨의 남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편은 ‘우리 어머니 음식이 맛있지는 않지’ 자주 말해요. 그래서 자기 입맛도 무던한 것 같다고요.” 하지만 김씨의 남편은 ‘엄마표 콩나물국’은 각별히 좋아한다. 다시 육수를 내지 않고 냉수에 콩나물만 넣어 끓인 후 고춧가루를 풀어 넣는 맹탕 콩나물국을 김씨는 갓 시집 와 처음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한동안 못 먹으면 꼭 생각나는 ‘소울푸드’다. “객관적으로 맛없는 거 알지만, 그맛이 좋고 그립대요.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이제 당신의 이 맛없는 요리를 좋아해 줄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이 생겨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건 엄마의 음식이 아니라 엄마 그 자체인 셈이다. 날마다 9첩 반상을 차려주시던 솜씨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도, 엄마가 좋으니까 무슨 음식을 해주든 맛있었던 것 아닐까.

● 엄마의 집밥, 그 절절한 무임노동

우리 시대의 엄마들은 실제 어떻게 집밥을 차릴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유아발레스쿨에서 약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할머니와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대기실(60대 2명, 40대 2명, 30대 1명)에서 집밥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졌다. 절절하고도 뜨거운 답변들이 쏟아졌다. 일주일 집밥 차림표는 대동소이. 아침은 주로 밥과 간단한 반찬을 차리지만, 가끔 떡 고구마 빵 과일 주스 선식을 내놓기도 한다. 점심은 유치원과 학교 급식 이용, 저녁은 정식으로 밥, 국이나 찌개, 요리 한 가지, 밑반찬으로 차린다. 외식은 일주일에 2회 이상 한다. 집밥은 소울푸드인가? 단호한 답변, “그렇다.” 집밥이 도대체 무엇이건대? “나도 먹고 싶고, 아이, 남편과도 함께 먹고 싶다. 하지만 차리기 정말 힘들고 귀찮다. 언제까지 무한반복해야 하나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그래도 좋은 재료를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해 해먹으려 애쓰고 있다.”

모두가 손쉽게 낭만화하는 엄마의 사랑과 정성을 이 실전의 엄마들은 “죽을 힘”이라고 표현했다. 가짓수는 많고, 조리법은 복잡한 노동집약형의 한식 집밥을 엄마의 무임노동으로 조달해온 한국의 가족문화. 퇴근도 없고, 휴일도 없고, 휴가도 없고, 정년퇴직도 없는 직업이 주부다. 그러니 엄마들이 간편하고 쉬운 백종원의 레시피에 빠져드는 것도 당연지사. ‘죽을 힘’을 ‘적은 힘’으로 바꿔주는 마법을 그 소박하고 소탈한 남자는 매주 보여준다. 거기다 한 가지 레시피로 변형, 응용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꿀팁’까지.

초등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 한용희(39)씨는 백종원의 ‘종이컵 계량’에 꽂혔다. “수많은 레시피가 인터넷 검색대에 오르지만, 앞치마 두르고 고상하게 그램수 재가며 저울질해봐야 공들인 보람은 없는 경우가 태반이죠. 백선생표 레시피를 미식 전문가 입장에서는 낮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보장된 맛을 내는 레시피는 절대로 쉬운 게 아니에요. 요리는 젬병이지만 가족 음식만큼은 사 먹이고 싶지 않은 게 엄마 마음인데, 찌개 하나, 밑반찬 두 개 만드는 데 세 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전전하고, 남편은 늦은 밤까지 퇴근을 못하니, 전업주부의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모여 집밥 먹는 모습은 기념일에나 가능한 풍경이다. 요즘 주부들은 너무 요리를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홀로 가사를 책임지는 핵가족의 전업주부가 요리의 비중을 낮추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보자면 합리적인 결정이다. 노동의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각만 앞세우면 폭력적이 되기 쉽다.

한씨는 “음식의 맛 자체보다 가족이 갖고 있는 따스하고 좋은 기억 때문에 집밥을 더 열망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앞치마 두르고 요리하는 엄마의 뒷모습, 간을 보며 갸우뚱거리던 엄마의 고갯짓, 무치고 버무리면서 한 손에 덜어 입에 넣어주시던 그 맛, 그런 게 집밥 아닐까요? 어설픈 요리솜씨에 양념만 슬쩍 덧칠한 반찬가게 음식이더라도요.”

초등생 형제를 키우는 전업주부 김지현(40)씨는 매 끼니 새로운 밥과 반찬으로 9첩반상 수준의 밥상을 차려내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의 입맛을 너무 높은 수준으로 올려놔 미래의 며느리에게 벌써부터 미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김씨는 아들들이 아내와 자식을 위해 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아 멋진 한 상을 차려낼 수 있도록 키워낼 생각이다. “집밥이란 게 엄마가 하루 온 종일 매달려 삼시 세 끼 차려내는 ‘전업’의 노동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게 요리하며 먹었던 밥으로 의미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백종원씨나 TV에 나와 인기를 끄는 수많은 셰프들이 모두 남성인 건 밥상 차려주는 아빠, 남편에 대한 여성들의 로망 때문 아니겠어요?”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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