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부터 전화가 막 와요. 빨리 출근하라고, 손님 왔다고. 그러면 낮부터 손님을 받아요. 아침에 퇴근했으니 피로도 풀지 못하고 또다시 거의 10시간 이상 술을 마셔야 돼요. 오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얘기하고 술 마시고 노래해야 하니 얼마나 지치겠어요. 자정쯤 술에 잔뜩 취한 손님이 ‘500원 줄게 나가자’이러는 거에요. 어이가 없었지만 좋게 말했어요. 500원 받고 어떻게 나가냐고. 그랬더니 따귀를 때리고 발로 차더군요. 그런데 겨우 몇 만원 하는 테이블비를 받지 못할까봐 울지도 못하고 그냥 맞고만 있었어요.
진짜 어이없는 것은 사장 언니가 절 불러내서 자기 아는 사람이 손님으로 왔으니 그 방에 잠깐 들어가라는 거에요. 하루 종일 술 마셔서 정신이 없는데 맞고 울어서 얼굴은 엉망이었죠.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이런 술집에서 일하면서 손님을 가려가며 받네’라고 하더군요.”
얼마 전까지 룸살롱에서 일하던 A씨는 업주에게 혹사 당한 기억을 떠올리면 또다시 울분이 차오른다. A씨의 사례는 유흥업소 업주가 성 판매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또다른 축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 버는 기계, 아니 기계만도 못한 노예 정도로 여기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죠.”
우리 사회에서 성 매매를 이야기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모멸의 대상인 성 판매 여성과 비난 혹은 동정(주로 남성 위주의 ‘재수 없게 걸렸다’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성 구매 남성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이 빠졌다. 촘촘하게 짜인 성 산업의 중심에서 가장 많은 돈을 긁어 모으는 관련 업주들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포주”라며 “이는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이라는 뜻”이라고 정의했다.
최근 스마트폰 채팅앱을 이용한 조건만남처럼 알선업자의 중개를 거치지 않는 성 매매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룸살롱과 안마시술소 등 업장을 갖춘 형태의 성 매매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 매매는 여성이 남성에게 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남성(업주)이 남성에게 파는 것이다.
빚의 올가미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성들
#“룸살롱에서 일할 때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어요. 업주에게 얘기 했더니 재수없다며 숯을 피우는 거에요.”
#“어떤 손님이 관계를 갖고 나서 성병에 걸려 이혼하게 생겼다는 거에요. 그러니 업주가 저한테 술값을 물어내라는 거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병원에서 검사 받고 소견서 갖다 주니까 더 이상 술값 얘기를 하지 않더군요. 업주는 아가씨 편을 들지 않아요. 손님편이에요.”
룸살롱에서 일한 B씨의 경험들은 업주가 성 판매 여성을 어떻게 보는 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업주들은 어떻게 성 판매 여성들을 강하게 옭아매며 인권을 유린할 수 있을까.
그 수단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지게 되는 빚이었다. 업주들은 성 매매업소에서 일을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옷이나 화장품 구입 등 생활비 용도로 수백 만원에서 1,000만원의 돈을 선불금이라는 이름으로 빌려준다. 이후 업주들은 ‘나한테 빚을 졌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으로 여성들을 대한다. 결국 업주들은 선불금이라는 빚을 빌미로 여성들에게 인권 유린을 당연하다는 듯 자행한다.
C씨는 룸살롱에서 일할 때 자연유산을 겪었지만 제대로 몸을 돌보지도 못했다. 업주에게 진 빚 때문이었다.
“하혈을 해서 업소에 얘기하고 수술 받은 후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3일째 되니까 업주가 그만 쉬고 나와서 일하라는 거에요. 빚을 갚으라는 거죠. 그 바람에 몸조리도 하지 못하고 업소에 나가서 술 마시고 성 관계를 갖는 2차도 나갔어요.”
그만큼 업주들은 빚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업주들은 여성들이 빚의 굴레를 벚어나지 못하도록 결근비나 지각비 등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한다.
10대 시절 성 매매업소 집결지(집창촌) 등에서 일했던 여성 D씨는 처음 1,500만원이었던 빚이 세 달 만에 두 배로 불었다.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결근비로 100만원씩 빚이 쌓이게 만든 장치 때문이다.
“삼촌이라고 부르는 집결지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너희 오늘 하루 쉴래? 어디 가서 회나 먹자’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어요. 그러면 고스란히 결근에 따른 빚이 100만원 쌓이는 거죠. 그때는 어려서 그런 줄도 몰랐어요.”
이밖에 업주들은 집결지에서 도망간 여성을 찾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 ‘하이방비’, 의상비, 성형수술비, 미용실비, 택시비 등 성 판매 여성의 수입을 갉아먹는 갖가지 장치를 동원하고 있다.
성 판매 여성에 기생하는 업소 사람들
반(反) 성매매 인권단체인 이룸에서 성 판매 여성의 인터뷰를 토대로 발행한 ‘성 판매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이라는 책을 보면 성 매매 업소 종사자들이 성 판매 여성들을 얼마나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업소 종사자들의 호칭이다.
지금까지 성 매매 관련 연구를 보면 대부분의 성 판매 여성들은 어린 시절 가정이나 학교 등 보호 받아야 할 곳에서 오히려 배제되고 폭력을 경험했다. 그만큼 성 판매 여성들은 겪어보지 못한 따뜻한 가정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안고 있다. 업소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삼촌, 이모, 언니, 오빠 등 친근한 호칭들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채 성 판매 여성을 착취한다.
“마담들은 아가씨들이랑 가장 가까이 지내며 챙겨주는 척해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단물 쓴물 다 빼내는 가장 나쁜 사람들이에요. 몸이 아파 결근하면 집에 찾아와서 쓰러져도 가게 와서 쓰러지라며 문이며 탁자를 발로 차고 난리를 쳐요. 그러다가 찾아주는 손님이 많지 않으면 다른 가게로 옮기라고 구박하죠.”
마담 등 업소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성 판매 여성의 출근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성들의 수입 일부가 곧 그들의 수입이기 때문이다. 마담들은 ‘생리하는 것을 걸리지 마라’ ‘피임도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성 판매 여성이 원활하게 돈을 벌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러면서 마담들은 성 판매 여성의 수입 일부를 ‘찡값’이라는 명목으로 챙긴다.
업주는 성 판매 여성들의 가치와 서비스를 앞세워 시중보다 수십 배 비싼 술값을 챙기고 소개비 명목으로 2차 비용의 일부를 챙긴다. 웨이터들은 성 판매 여성을 통해 성 구매자로부터 팁을 얻어내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삼촌ㆍ이모들은 수고비를 받는다. 소위 보호를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기생했던 ‘기둥서방’들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착취 구조를 바꾸려면 업주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수연 살림 자활지원센터장은 “국내 성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업주들이 가만히 앉아서 너무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며 “이 과정에서 성 판매 여성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인권 유린이 심각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업주들이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가 되면 성 매매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세무조사 등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업주와 알선업자를 강하게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 시리즈 더보기
▶ <1> 업소 생활 20년 손 털고 나온 ‘왕언니’의 바람
▶<3>'진상고객' 성폭력에… 법 공부 나선 성 판매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