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제외되면 약값 20배
약 교체 부작용 등 고려해 결정
한국노바티스에 151억 부과
나머지 9개 품목 반년 급여정지
“엄벌 원칙 저버린 선례” 비판
‘기적의 백혈병 치료제’로 불리는 글리벡에 대해 보건당국이 건강보험 급여 정지라는 고강도 제재 대신 상대적으로 약한 처분인 과징금 부과를 택했다. 글리벡을 쓰는 백혈병 환자들의 반발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인데, 리베이트 엄벌 원칙을 저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에게 의약품 리베이트를 제공한 한국노바티스에 대해 이 회사가 만드는 의약품 중 9개 품목의 건강보험 급여를 6개월간 정지하고, 나머지 33개 품목에는 총 5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번 처분을 앞두고 가장 논란이 됐던 품목은 글리벡필름코팅정100㎎(글리벡)이었다. 대체할 만한 다른 약이 있는 의약품은 급여 정지를 해 시장에서 퇴출하되, 대체할 약이 마땅치 않은 약은 환자 피해를 막기 위해 과징금으로 갈음하는 것이 복지부의 리베이트 제재 원칙이다. 2000년도에 개발돼 지금까지 백혈병 치료에 큰 성과를 낸 글리벡은 현재 정식으로 등재된 복제약(제네릭)만 13개 회사 31개 제품에 이른다. 원칙대로라면 글리벡은 급여 정지를 해야 맞지만, 복지부는 과징금(151억6,700만원)으로 대체했다.
이는 시장점유율 90%에 달하는 글리벡 복용 환자들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다. 이달 초 한국백혈병환우회는 복지부를 방문해 ‘약을 바꾸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급여 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을 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급여 정지가 된다고 글리벡을 살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 약값 본인부담 비율이 현재 5%에서 100%로 뛰어 환자들의 약값 부담이 20배로 불어난다.
백혈병 환자가 약을 바꿨을 때 실제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지부는 대한가정의학회와 대한암학회, 대한혈액학회 등의 의견을 들었고, 이중 일부가 ‘성분이 같다고 해도 약제를 바꾸면 적응 과정에서 호중구감소증, 혈소판감소증, 간 기능 이상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냈다. 다만 이는 임상 경험 등을 토대로 한 의견이며 부작용을 입증할 만한 논문 수준의 근거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복지부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복지부가 환자들의 막연한 우려를 방패막이 삼아 글리벡에 솜방망이 처분을 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간사는 “항간에 떠도는 복제약에 대한 근거 없는 우려를 정부가 공식 확인해준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명확한 연구 결과가 없는데도 정부가 무분별한 예외를 인정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에 급여 정지 조치가 내려진 품목은 엑셀론캡슐과 엑셀론패취(치매), 조메타레디주사액(골대사) 등이다. 지금까지 본인부담 비율이 5~30%였던 이 품목들을 구입하려면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약값을 100% 본인이 내야 한다.
앞서 한국노바티스는 2011년부터 5년간 의학전문지와 학술지 등을 통해 의사들에게 강의료 등 명목으로 총 25억9,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해 검찰에 기소됐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