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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영국은 유럽을 떠나는 게 아니라 이끌어야

입력
2016.06.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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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자신들이 유럽의 일원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놓고 치르는 국민선거에 대한 최근 영국 신문들의 헤드라인에 비춰보면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오’인 듯하다.

EU 탈퇴 지지자들은 두려움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며 주장을 펴고 있다. 고국에서 영국으로 도망쳐온 이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민자든 폭탄 테러든) 영국인의 생활방식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반대자들, 즉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다. 유럽 내 무역에 좌우되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쓰이는 구호들은 서로 대립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탈퇴’ 지지자들의 수사법은 1940년 2차대전 초기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영국군이 본국으로 철수한 작전 당시의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국가는 침략군의 함대와 군대에 굳건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하며, 유럽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론적으로 ‘잔류’ 주장은 이와 다른 영국을 대변한다. 외부 지향적이고 적극적이며 국제적 마인드를 가진 영국. 그러나 보수당은 이 문제로 의견이 심각하게 갈라져 있다. 그리고 유럽 통합에 회의적이고 적대적인 매체로부터 비난을 받느라 보수당의 가장 출중한 대변인들은 지쳐가고 있다. 그 결과 보수당은 유럽과 완전히 맞물려 돌아가기보다 한쪽 다리만 걸친 영국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야 할 건설적이고 원칙적이며 진보적인 주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영국이 유럽에 잔류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건설적 주장을 펼쳐야 한다. 21세기 영국인들의 요구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과거를 버려야 하고, 현재는 세계화의 시대라는 걸 인정하며, 미래는 기회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영국의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세계적 협력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정확히 EU가 영국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탈퇴’ 지지자들은 세계화가 혜택이 아닌 책무라고 보기 때문에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호와 분리를 바란다. 전체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확실히 투표하겠다는 이들 중 43%가 EU를 탈퇴함으로써 영국으로 통제권을 가져오는 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재정상 더 곤궁해지는 결과가 오더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단지 23%만 반대했다.

이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유럽의 미래에 관해 국민투표 이후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점점 더 통합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바뀌는 세계에서 국가는 자기가 바라는 자율성과 자기가 필요로 하는 세계적 협력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국이 두 절대적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옳지 않다. 그 중 하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들과 협력할 필요성을 무시하는 완전한 자율성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정체성과 의사결정의 끊임없는 중요성을 무시하는 유럽 거대국가와의 완전한 통합이다.

제기되는 문제마다 영국과 유럽 모두가 더 경쟁력 있고 민주적이며 책임감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유럽 안에서 기회, 공정, 안전 그리고 보안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줄 수 있다면, 또 우리가 EU 개혁안의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영국이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를 예로 들어보자. 자율성과 협력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영국은 향후 10년간 50만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유로화를 쓰지 않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금리를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 단일 시장으로 편입했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이 늘어나기도 했다. 비슷하게 영국이 디지털, 에너지, 서비스(특히 금융서비스)에서 공평한 경쟁의 장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주도한다면 유럽 전체에 더 큰 경쟁력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개혁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영국은 다음 문제들에 관한 의제를 지켜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에너지 환경 연합을 통한 에너지 효율 문제, 조세회피처 대처 방안을 통한 공평 과세 문제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정보수집 강화, 테러와 불법 이주 단속을 통한 안보 문제.

유럽의 개혁에 대한 영국의 청사진은 대담하고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 유럽이 사회적 차원에서 단일 시장임을 인식하고 범유럽적 공동 과학 연구를 심화시켜야 한다. 고립보다 협력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 이런 청사진은 2017년 영국이 EU 의장국이 됐을 때 의제로 내세울 수 있고 국경을 초월한 관계가 더욱 밀접해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영국은 의장국이 됐을 때 국제적 발전과 갈등 해소에 더 협조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지지할 수도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럽 주도의 현대판 마셜 플랜이 여기 포함된다.

영국에겐 유럽 성장의 다음 단계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최전선에 설 기회가 있다. 제국주의 시기 이후의 지난 반세기 동안 영국은 우리의 운명 의식에 걸맞은 역할을 찾으려고 애써왔다. 유럽과 적극적인 관계를 통해 영국은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에서 절반 이상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28개국 중 하나 이상이며, 계속해서 성장하는 EU 회원국 중 하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6월 23일, 영국의 미래가 유럽을 떠나는 게 아니라 유럽을 주도하는 데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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