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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산불에도 '경보음' 먹통… 국민 속도 함께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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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산불에도 '경보음' 먹통… 국민 속도 함께 탔다

입력
2017.05.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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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집 타들어 가는데 긴급재난문자 한 통 없어

"혼란가중 우려"·"대형산불 아니었다" 이유도 제각각

6일 오후 강원 강릉시 성산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밤에도 꺼지지 않고 확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6일 오후 강원 강릉시 성산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밤에도 꺼지지 않고 확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큰불이 나고 지역 전체가 난리인데 강릉시민한테는 재난문자 한 통 오지 않았습니다."

"산불이 크게 났고, 아직도 진화작업 중입니다. 왜 강릉시민으로서 문자 하나 받지 못할까요. 불바다 되기 직전에는 받을까요?"

"집 앞까지 불 나도 대피 문자 한 통 안 올 것 같아 불안해서 잠도 안 와요."

또다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화마(火魔)는 순식간에 민가를 집어삼켰고 주민들은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도망쳤다.

발화지점에서 7㎞가량이나 떨어진 시내까지 매캐한 냄새와 뿌연 연기, 재까지 날아들었지만, 휴대전화는 조용했다.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올라오는 뉴스 속보를 보고 상황을 물으며 갈팡질팡했다.

고속도로는 연기로 뒤덮여 운전 중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불길이 도로변까지 번져 교통안전마저 위협했으나 운전자들은 자세한 영문도 알지 못한 채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쥐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행했다.

신원섭 산림청장이 7일 오전 강릉시청 재난상황실에서 강릉과 삼척, 상주 산불과 관련한 피해 상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원섭 산림청장이 7일 오전 강릉시청 재난상황실에서 강릉과 삼척, 상주 산불과 관련한 피해 상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로 강릉산불 이야기다. 지난 6일 오후 3시 27분께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야산에서 시작된 이 불은 건조한 날씨와 초속 20m에 이르는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산림은 물론 민가까지 덮쳤다.

하지만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민안전처는 어떤 재난문자도 발송하지 않았다.

이날 안전처가 발송한 문자는 오후 4시 4분 강원 고성·양양·속초·삼척·동해 등 건조경보가 내려진 지역에 발송한 입산 시 화기 소지 및 폐기물소각금지 등 화재 주의 내용을 마지막으로 어떤 재난안전문자도 발송되지 않았다.

긴급재난문자전송서비스(CBS)는 재난·재해 발생 예상지역과 재난 발생지역 주변에 있는 국민에게 재난정보 및 행동요령 등을 신속히 전파하는 대국민 재난문자 서비스다.

CBS(Cell Broadcasting Service)가 탑재된 2G 휴대폰 소지하거나 3G 또는 4G 가입자 중 '안전디딤돌 앱'을 설치하면 문자 60자 이내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문자송출 기준은 태풍, 호우, 홍수, 대설, 지진해일, 폭풍해일, 강풍, 풍랑 등 기상특보 발령 시와 산불, 산사태, 교통통제 등 필요시다.

분명히 문자송출 기준에 '산불'이 나와 있지만, 국민을 위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지자체나 기상청, 한국도로공사 등 정부기관에서도 긴급재난문자 송출요청을 하면 문자송출이 가능하지만, 어느 기관에서도 안전처에 이를 요청하지 않았다.

SNS 계정도 조용했다. 국민안전처나 산림청 페이스북 계정에는 아무런 소식도 올라오지 않았다.

강원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산불 발생 5시간여 만에 산불 소식이 올라온 정도다.

재난문자 미발송과 관련해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강릉이나 강원도에서 재난문자를 요청하지 않아 발송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7일 강원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전학표(57)씨 집이 불에 타 폭삭 주저앉아 검게 탄 흔적만 남았다. 전씨는 "4시 좀 넘어서 입은 채로 도망 나왔다"라며 "남은 거라고는 트럭하고 몸뚱이뿐"이라며 흐느꼈다. 연합뉴스
7일 강원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전학표(57)씨 집이 불에 타 폭삭 주저앉아 검게 탄 흔적만 남았다. 전씨는 "4시 좀 넘어서 입은 채로 도망 나왔다"라며 "남은 거라고는 트럭하고 몸뚱이뿐"이라며 흐느꼈다. 연합뉴스

현장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안전처 자체 판단만으로 문자를 발송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문자를 발송하면 실제 피해 지역에만 발송되는 게 아니라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에게도 발송된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강릉 지역 전체에 문자를 보낼 수는 있지만, 강릉에서도 일부 지역만 콕 집어 보내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산불이 나고 난 뒤 즉시 강릉시에서 주민대피령을 내렸고, 한국도로공사에서 고속도로 일부 구간 차량 통행을 전면통제하는 등 현장 조치가 된 상태에서 문자를 보내면 혼란을 가중할 우려가 있어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릉 시내 상황에 대해서는 "언론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강원도 관계자는 이번 강릉 산불은 '대형산불'이 아니어서 문자송출이 애매했다고 답했다.

대형산불 기준이 100㏊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대형산불의 예로 2004년 속초와 강릉, 2005년 낙산사 화재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마을별로 방송도 하고 아파트별로 방송도 하는 등 산불 소식을 알렸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SNS나 포털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글을 보면 당시 도심 주민들은 산불 소식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드론까지 산불현장에 투입될 정도로 산불 진화 시스템이 고도화된 마당에 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진화작업에 나섰던 10년도 더 지난 예를 들며 '이번 산불은 대형산불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선뜻 이해하기는 어렵다.

도 관계자 역시 대형산불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에 "대형산불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요즘 매일 전국에서 20건 이상의 산불이 나고 발생 초기에 피해면적이 10㏊가 될지, 100㏊가 될지 알 수 없는데 일일이 재난문자를 다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하소연 했다.

한편, 산림 당국은 7일 오전 5시 20분께 해가 뜸과 동시에 강풍을 타고 번진 강원 강릉과 삼척 대형산불 진화 중이다.

산불진화가 재개된 7일 오전 진화에 나선 산림청 산불진화 헬기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진화가 재개된 7일 오전 진화에 나선 산림청 산불진화 헬기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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