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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는 복원력을 믿는가

입력
2017.03.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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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오후 광장을 가득 매운 수많은 군중의 흔적은 다음날이면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월요일 아침이면 사람들은 다시 말끔한 모습으로 자신의 일에 돌아갔다. 지난 수개월간의 정치적 혼란과 집단적 분노의 흔적도 역시 조만간 누군가가 깨끗이 치워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났을 때 ‘그냥 나쁜 꿈이야, 괜찮아’라고 다독거려줄 어머니의 손길을 기대했다. 한숨 더 자고 나면 따뜻한 된장국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밥이 차려져 있을 것이고, 그때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혼돈의 시기를 지내왔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실질적인 외교 공백 상황에 놓여있던 동안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외교구도 하에서 여전히 의구심을 가진 눈초리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었고, 중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우려했던 경제제재를 보란 듯이 시작했으며. 일본이 미일 동맹의 견고화를 바탕으로 자국의 외교적 입장을 공고화해 가는 이면에 한일관계는 과거사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북한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혼란의 수혜자가 되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숨 더 자고 나면 한미관계는 다시 굳건해 질 것이었고, 사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그 사이 해결방안을 찾아줄 것이고, 도덕적 명분을 바탕으로 한일관계는 우리가 다시 주도해 나갈 것이라 믿었다. 이제까지 한국 외교가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우리는 늘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기에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한발 뒤에서 뜻하지 않은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반년 남짓 지속된 정치적 불안과 검찰수사, 그리고 불확실성의 확대 하에서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들었고, 고용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산업의 핵심 축을 이루던 조선, 해운업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지위는 더 위태로워졌다. 모든 국가가 끊임없이 앞으로 뛰는 글로벌 무한경쟁을 우리는 잠시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숨 더 자고 나면 우리는 다시 기적처럼 경제를 되살리고, 투자를 유치하고, 청년들에게 신바람 나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새로 태어날 한국은 차세대의 선두주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만들 구세주가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불안의 시기를 지내왔다.

그 동안 한국이 보여준 정치, 경제적 복원력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극복해왔다. 몇몇 기업들은 그동안 글로벌 시장 주도자로 성장해 왔고, 주요 다자외교의 장에서 한국은 보다 안쪽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었고, 곧 많은 것을 제자리로 복원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 복원의 비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사드 문제에 관한 소통의 실패는 한중간의 감정의 골을 더 키웠고, 주요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바탕으로 신동맹 체제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한국은 가뜩이나 협소한 외교공간을 늘려나갈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제재를 호기로 생각하는 외국 기업들은 한국이 놓치는 시장을 실시간으로 접수해가고 있다. 국제사회는 ‘새로운 비정상(New abnormal)’이 되어버린 한국의 일탈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고, 복원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 비용은 우리가 갚아야 할 부채이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사회의 약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할 기회비용이다. 이제 복원력은 시간과 비용과의 싸움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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