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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피해국 벨라루스, 원전건설 현장을 가다

입력
2016.01.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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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시 바람 영향으로 우크라이나 보다 더 큰 피해

만성적 에너지 해외의존…정부는 경제성 내세워 원전건설강행

처음부터 투명성 논란…대다수 민심은 반대와 두려움

벨라루스 아스트라벳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원전 냉각탑. 2018년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벨라루스 아스트라벳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원전 냉각탑. 2018년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공사는 시작했지만 완공 못할 수도 있어요. 비용은 갈수록 늘고 일정은 계속 늦춰지고 있거든요. 벨라루스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전 건설) 제의를 받아들인 거라 생각합니다.”

피터 필로(30) 벨라루스 녹색당 체르노빌위원회 의장은 현재 건설중인 이 나라 첫 원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986년 4월 26일 폭발참사를 낸 체르노빌 원전은 우크라이나에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남동풍이 부는 바람에 실제로는 우크라이나보다 벨라루스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방사능 낙진의 70%가 벨라루스로 향했고, 그 결과 벨라루스 농경지의 5분의 1이 세슘과 같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됐다는 보고도 있었다.

피터 의장은 벨라루스 제 2의 도시 고멜 출신. 원전에서 동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고멜은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방사능 오염 영향권 내에 있던 지역이다. 당시 방사능은 이 대도시를 살짝 비껴가 인근 지역들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의무 건강 체크를 받았어요. 체내 방사능 오염도를 줄이겠다고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까지 요양을 하러 가기도 했지요. 학급에 그런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벨라루스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 참사로 인한 벨라루스의 경제적 손실은 지난 30년간 2,350억달러에 달한다. 1995~6년 18세 이하 갑상샘암 환자는 1986년의 무려 39배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사회적으로 피해에도 불구하고, 벨라루스는 사고 20년 만인 2006년 첫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이어 2009년 서북쪽에 위치한 아스트라벳을 최종 부지로 정하고,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인 로스아톰을 원전 건설사로 선정했다. 불투명한 환경 및 경제성 평가, 건설 승인 전 착공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예정대로라면 2018년 첫 가동이 가능하다. 2020년이면 2기까지 건설이 완료돼 약 2,000㎿급의 발전소가 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후 주변지역 방사능오염현황. 붉은 농도가 짙어질 수록 방사능물질인 세슘 오염도가 높은 지역이다 <자료: UNSCEAR>
체르노빌 원전 사고후 주변지역 방사능오염현황. 붉은 농도가 짙어질 수록 방사능물질인 세슘 오염도가 높은 지역이다 <자료: UNSCEAR>

원전 건설 현장으로 가는 멀고 험한 길

아스트라벳 원전 건설 현장으로 가는 길은 길고도 지난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의 국제공항. 아스트라벳은 이곳에서 불과 45㎞ 밖에 떨어지지 않아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기로 했다.

보안 검색 통과부터 쉽지 않았다. 경찰은 차 안을 샅샅이 점검한 뒤, 취재진들의 가방 속을 일일이 확인했다. 체르노빌 관련 서적이 발견되자 꼬치꼬치 캐물었다. 화약, 총기류 정도를 검사하는 여느 국경 검색대와는 확연히 다른 과정이었다. 1시간여가 흘러서야 취재진은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스트라벳으로 이어진 도로. 창밖에는 가을걷이를 끝낸 넓은 평야와 농가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원전 부지에 가까워 왔을 때도 지평선은 무한대로 이어졌다. 멀리서 원전 냉각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설 중장비들도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차량의 속도를 늦추며 카메라를 갖다 대는 순간, 경찰이 다가와 차를 세웠다. 통역이 경찰차에 동승해 심문을 당하는 30여분 동안 우리는 말없이 또 대기해야 했다. 이 때의 경고사항은 ‘뒷좌석 승객이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 통역은 “이런 이유로 경찰이 차를 세우는 일은 처음 겪는다”고 했다. 국경을 넘어설 때도 그렇고, 이곳 도로에서도 그렇고, 감시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벨라루스 정부는 처음부터 아스트라벳 원전의 준비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원전 반대 활동가들이 구금되거나 건설 현장을 촬영하던 취재진이 제지 당하고 경찰 조사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현지 기자는 “현장 취재가 명목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허가를 받기 위해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원전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질 당시에는 당국이 비판을 막으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벨라루스는 2015년 180개국 가운데 157위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1994년부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철권통치를 이어오고 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5연임에 성공, 최소 2020년까지 집권을 보장받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선거부정과 야당탄압, 인권유린은 물론 각종 기행까지 일삼아 국제사회에서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란 평가를 듣고 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중 하나인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년 출간)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미국비평가협회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본국 벨라루스에선 검열에 걸려 책이 출간되지 못했다.

아스트라벳 원전 부지 인근 보르야니 지역은 노령화가 진행 중인 전형적인 농경마을이다. 한쪽에선 첨단 원전이 지어지고 있지만 이 마을엔 시간을 잊은 듯 달구지가 다닌다.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아스트라벳 원전 부지 인근 보르야니 지역은 노령화가 진행 중인 전형적인 농경마을이다. 한쪽에선 첨단 원전이 지어지고 있지만 이 마을엔 시간을 잊은 듯 달구지가 다닌다.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투명성, 반대 그리고 탄압

“아스트라벳은 벨라루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입니다. 북으로는 자연보존구역으로 지정된 국립공원이 있고 고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도 많지요. 이런 곳에 원전을 짓는다니 비극입니다.”

아스트라벳의 두번째로 큰 마을 보르야니에 사는 니콜라이 울라셰비치(64)씨는 이렇게 말했다. 원전에서 6㎞ 떨어진 보르야니는 인구 1,300명의 농경마을. 500년이 넘은 교회와 호수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그는 여러 후보지역 가운데 왜 최종적으로 이곳이 선정되었는지에 대해 “다른 후보지역 두 곳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동쪽은 대통령의 고향이자 원전반대활동이 활발했으며 러시아와 가깝다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지가 넓고 인구가 적은데다 이런 걸림돌까지 없으니 불길해 하던 게 결국 현실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근방에서 태어나 이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평생을 살았다. 공립학교에 근무하고, 지방 의회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하는 이른바 공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두 곳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 지역민들을 이끌며 원전 반대 활동을 펼친 데 대한 보복을 당한 것이다.

“먼저 지역민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어요. 지역언론은 이미 원전이 들어오면 무엇이 좋은지, 원전과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 지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어서 독립언론에 원전 반대 기고문도 실었죠.”

활동을 본격화하자 경찰은 그와 동료들의 집을 덮쳤다. 수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직장에서 해고 위협도 당했다. “정규직이었는데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문서에 사인을 강요당했어요. 맘에 안 들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지역민 서명은 8명이라는 초라한 숫자로 종료됐지만 수도인 민스크와 세계환경단체들에서 연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들도 억류되거나 추방당하는 등 정권의 탄압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후 열린 공청회는 반대자들을 격리하고 그 앞으로 경찰들을 배치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묵살해버림으로써 허무하게 끝났다. 그는 “노령화 지역에 그나마 있는 청년들도 국경의 보안요원이나 정부 소유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했다가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팽배해 이들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한 벨라루스 현지 기자는 “시민들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원전 찬반을 물으면 애매하게 답하지만 술집과 같은 일상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면 대부분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고도 했다. 실제로 벨라루스 정부기관인 국립과학연구소(NAS)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12년 사이 원전 찬성 여론은 28.3%에서 53.5%로로 급격히 늘고, 반대는 46.7%에서 21%로 줄었다. 반면 2013년 독립연구기관인 사회경제정치연구소(IISEPS)의 조사에서 찬성은 34%, 반대는 37.6%로 여전히 반대가 높았다. 이어 22.6%는 무관심, 5.8%는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니콜라이 울라셰비치 씨는 원전반대활동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고 직장까지 잃었다. 하지만 그는 미래세대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니콜라이 울라셰비치 씨는 원전반대활동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고 직장까지 잃었다. 하지만 그는 미래세대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 “가장 경제적인 건 원전 뿐”

벨라루스 정부는 원자력이 싸고 안전한 전력원이란 점을 강조한다. 또 주 연료 및 에너지 소비의 85%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벨라루스의 대외의존적 상황이, 원전을 통한 대규모 전력생산으로 통해 일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원전 반대 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러시아에서 가스를 수입하던 것을 우라늄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며 “에너지원만 바뀔 뿐 에너지 안보 증진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에 대해서는 “이미 원전이 있어 관련 인프라가 갖춰진 러시아와 리투아니아조차 새 원전계획에 대해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종 폐기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벨라루스가 어떻게 경제적일 수 있겠느냐”고 반발한다. 원전 건설은 인공위성이나 남극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치적을 쌓으려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개인적 야망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벨라루스의 에너지 수입 의존율은 85%로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이 러시아에서 오는 싼 가격의 천연가스다. 수력과 지열 등의 사용을 늘려가고 있기는 하지만, 가스가 전력생산의 98.28%, 열에너지의 88.57%(2013년 기준, IEA)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상황에서 자연에너지로의 치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주장하는 ‘원전 불가피론’도 여기서 나온다. 끔찍한 원전 참사를 겪었지만 30년이 흘렀어도 또 다시 원전에 기대야 하는 상황, 이것이 벨라루스의 비극이다.

하지만 피터 필로 의장은 “지금까지 원전 없이도 살지 않았나. 벨라루스는 태양이나 바람에너지는 적지만 지열 잠재력이 높은 국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데서 해답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새 원전을 짓고 있는 아스트로벳에서 40㎞ 떨어진 곳에 있는 스타호브치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친환경 마을이다.
새 원전을 짓고 있는 아스트로벳에서 40㎞ 떨어진 곳에 있는 스타호브치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친환경 마을이다.

체르노빌 피해자 “사고 또 터질까 두려워”

새 원전을 짓고 있는 아스트로벳에서 40㎞ 떨어진 곳에 스타호브치라는 친환경 마을이 있다. 입구에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그 뒤로 패시브하우스들이 줄지어 선 곳. 2000년 독일 단체의 지원으로 조성된 이 마을에는 총 32가구의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들이 고향을 떠나 모여 살고 있다. 사고로부터 무려 14년이 지난 뒤에서야 이주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모든 피해자가 다른 지역에 살 집을 제공받았던 것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에두아르도(44)씨도 체르노빌 원전에서 60㎞남짓 떨어진 레치챠지역에 살았다고 했다. 강제 피난 지역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컸던 곳이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갈 형편이 못된 사람들은 계속 오염 지역에 살면서 그곳에서 난 음식을 먹었다. 깨끗한 음식을 가져다 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아이들은 여전히 몸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30년전 참사의 트마우마일까. 그는 여전히 무섭다고 했다. “14년 만에 원전을 피해 이곳에 왔는데 더 가까운 곳에 원전이 지어진다고 합니다. 그게 (국가 경제적으론) 좋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두려울 따름입니다.”

민스크(벨라루스)=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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