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생들, 온라인에 음식 의미 등 상세히 담아
외국인 관광객들 "이해 쉽다" 호평
‘제육볶음(stir the sixth)’ ‘수정과(modifications and)’
대학생 정채린(20)씨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 친구와 지난해 8월 서울 명동의 한 한식당을 찾았다가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음식명의 영어 표기가 엉터리였기 때문. 돼지고기를 뜻하는 제육은 ‘제6’으로, 수정과는 바로잡아 고친다는 뜻의 ‘수정(修正)’으로 번역돼 있었다. 이처럼 황당한 번역이 메뉴판에 버젓이 실린 것은 구글 번역 결과를 여과 없이 옮겨다 놓았기 때문이다. 정씨는 “관광 명소라는 명동의 식당이 이 정도면 다른 곳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외국인 혼자 식당에 오면 어떤 음식인지도 모르고 주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오번역이 아니더라도 한국 음식명의 영어표기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조차 어려운 암호문과 같다는 오명을 안고 있다. 코스모진 관광 R&D 연구소가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2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44명의 응답자가 음식에 대한 외국어 설명이 부족한 점을 불만으로 꼽았다. ‘공연 안내정보 부족’, ‘평범한 한류 관광지’에 이어 세 번째로 불만이 많았다. 학생들의 자율적 연구로 진행되는 시민교육 수업을 듣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교양학부) 정채린 최동혁(20) 김나연(20) 이세강(20) 문수빈(20) 학생이 외국인을 위한 온라인 한식사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이들은 우선 지난해 9월부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 동대문 이태원 등의 한식당을 방문해 인기 있는 메뉴 91가지를 선정했다. 그 다음에는 음식들을 밥 국 찌개 후식 등 일곱 가지로 분류하고, 음식 명칭을 발음과 의미대로 각각 로마자와 영어로 표기했다. 외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략한 설명도 넣었다. 3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지난해 11월 30일 내놓은 결실이 한식사전이 담긴 블로그(http://blog.naver.com/skybridge14)다.
영어의 조리 표현 중에는 우리말에 없는 단어가 많아 조리학과 교수에게 자문도 구했다. 물 없이 익히는 그릴(grill), 물을 써서 익히는 브로일(broil), 볶는 프라이(fry)의 차이도 알게 됐다. 사전을 만든 최동혁씨는 “영어사전만 열심히 찾으면 될 줄 알았는데, 기본적으로 조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가 좀 더 방대한 규모의 온라인 음식명칭 사전을 운용하고 있지만, 음식 명칭을 영어로 단순 번역하는 데 그쳐 한국 음식을 외국인에게 제대로 알리기는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관광공사 사전에 나온 구절판은 ‘아홉 가지 별미가 담긴 접시(Platter of Nine Delicacies)’로만 소개돼 있다. 대학생들이 만든 사전에는 ‘여덟 개의 칸에 담긴 볶은 채소와 달걀, 고기 등을 밀전병에 싸먹는 음식’ 같이 보다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다.
실제 외국인의 반응도 좋다. 캐나다에서 온 메건 맥도날드(21ㆍ여)씨는 “한식사전 블로그에는 음식이 밥 면 국 등 비슷한 범주 별로 분류돼 있어 찾기 편리하다”며 “외국인을 위해 매운 음식에 표시를 해둔 것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조만간 경복궁 같이 외국인이 자주 찾는 곳을 찾아 반응을 살펴본 뒤 음식사전을 계속 보완해 나갈 생각이다. 김나연씨는 “음식 가짓수를 늘리고, 인기 있는 메뉴를 표시하는 등 내용을 보충한 뒤 외국인들에게 온라인 사전을 적극 홍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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