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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 글은 철저히 독자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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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 글은 철저히 독자를 위한 것"

입력
2013.01.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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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자짜리 시 올린 뒤 SNS서 인기전자시집 '서울 시 1·2' 무료배포다운로드 10만건 이상 기록시각디자인 전공한 회사원"디자인도 수용자를 위한 예술시 쓰면서 신경 쓰는 대목은 공감"

"문학에서 주류,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은 뭐죠?"

이 사람, 인터뷰를 시작하자 대뜸 질문부터 쏟아낸다. 25자 내외의 짧은 시로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하상욱(31)씨다. 신춘문예 등 등단제도를 설명하자, 하씨는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작품이 내용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되묻는다. "신문사가 어떻게 생긴 곳인지 궁금했다"는 하씨는 지극히 평범한 30대 직장인처럼 보였다. 이런 친근함이 그의 장점이다.

하씨는 지난해 7월 페이스북에 두 줄짜리 시 '잠'을 올린 후 네티즌들 사이 일명 'SNS 시인'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특히 스마트폰 게임인 애니팡을 소재로 쓴 시('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 듣게돼')가 널리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애니팡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인기에 힘입어 9월 전자시집 '서울 시1', 10월에 '서울 시2'를 만들어 무료배포 했다. 시인지 광고 카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짧은 시 15편에 엽기적인 하씨의 사진을 덧붙인 '서울 시 1, 2'권은 지금까지 10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지난 해 11월 SK텔레콤은 SNS 시 공모전을 열고 하상욱씨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어릴 적, 남의 말을 너무 듣다 보면 바보가 된다는 생각에 책 읽기를 싫어했다는 하 씨는 "지금도 책이나 글에 큰 관심이 없다"며 자신의 시를 "시의 느낌을 패러디한 글"이라고 소개했다. "시라고 하면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인상이 있잖아요. 뭔가 시인의 독특한 인상이 있고, 많은 뜻이 내포돼있어 어려울 것 같은데, 저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글을 쓰거든요. 운율이나 형식미는 갖추고 있지만, 반전을 주는 글이죠."

하씨는 "사람들이 저를 작가로 부를지 시인으로 부를지 회사원으로 부를지 머뭇거릴 때 내 전략이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넌, 필요할 땐 내 곁에 없어/ 넌, 바쁠 때만 날 괴롭히지' ( '잠')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 '다 쓴 치약')

'너의 진짜 모습/ 나의 진짜 모습/ 사라졌어' ( '포토샵')

일상생활 속 경험을 담은 하상욱의 시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 씨는 "시 쓰면서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공감"이라면서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시가 아니라고 평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시작(詩作)에 관한 이런 태도는 대학에서 전공한 시각디자인의 영향이 컸다. 하씨는 "순수미술은 자신의 주관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지만, 디자인은 철저히 상대방을 위한 예술"이라며 "응용미술, 디자인이 내 적성이 더 맞았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저와 타인의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해요. 대상이 최종 소비자이건, 클라이언트이건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타협점을 찾아 표현하는 게 좋은 디자인의 관건이에요. 시를 쓸 때도 마찬가지죠. 저에게 기준은 이 시를 읽어줄 사람들이에요."

도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내용을 소재로 쓰되, 최대한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배제하는 것이 하씨의 원칙이다. 이렇게 쓰고도 주위 반응이 심드렁하면 곧장 폐기처분이다.

하씨는 "시를 문학보다 일종의 디자인으로 인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디자인의 첫 번째 원칙은 단순화에요. 어떤 작품에서 한 요소를 더 빼면 타인이 내 의도를 못 알아보는 시점이 있는데, 그때까지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키죠.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뺄 게 없는 디자인'인데, 똑같은 개념을 글 쓸 때도 대입시켜요."

띄어쓰기를 일부러 틀리는 것도 디자인에 맞춰서 한글을 배열하느라 생긴 결과다.

'고민/ 하게돼// 우리/ 둘사이'('축의금')

'생각의/ 차이일까// 오해의/ 문제일까'('미용실')

'나한테/니가// 해준게/ 뭔데' ('수수료')

출판사 중앙북스는 지난 해 전자책 이 출간된 후 하 씨와 종이책 출간계약을 맺었다. 전자책으로 먼저 발표된 시 30편을 비롯해 미발표된 100여 편의 시와 산문을 덧붙여 이번 주에 출간할 예정이다. 조한별 중앙북스 편집자는 "하상욱 시인은 스스로 창작물을 기획하고 만들어 배포해 이슈가 됐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놀라웠다"며 기대를 표했다. 해설과 발문, 추천사가 덧붙여진 기존의 시집과 차별화를 둔 시집을 낼 계획이다. 하씨는 "제가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유머와 권위 없음인데 유명해졌다고 시집에 추천사나 발문을 붙이는 건 우습다. 그냥 저는 제 방식대로 시집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종이책이 출간된 후에도 일부 내용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료배포할 계획이다.

"언제까지 쓰게 될 지 모르겠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한 글쓰기는 계속 할 거예요. 가치관이나 종교, 지역색을 떠나 누구나 편하게 읽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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