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스스로 사법부 권위와 법치 훼손
대통령 대리인단 행보, 헌재 결정 불복 부추길까 우려
최종 선고만 남겨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은 정치적 중대성으로 크게 주목받았지만 법리적 논쟁의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재판부를 공격하고 여론에 의존하면서 오히려 법치주의 훼손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정미(55ㆍ사법연수원 16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품격 있는 재판 진행이 되도록 협조해 달라. 일반사건이 아니라 대통령 탄핵 사건이지 않나”고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10일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그간 대통령 대리인단이 보여준 ‘불복행보’가 국민들의 불복 여론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을 가장 잘 아는 변호인 스스로 헌법과 재판관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광철 변호사(법무법인 동안)는 “분쟁은 한도 끝도 없고 소모적이니 사법시스템에 맡겨 그 결과에 승복하자고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인데, 그것을 대통령 측이 깨버리면 헌법적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다”라며 “대통령 대리인들도 저렇게 법정을 모욕하는데 앞으로 누가 재판의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겠냐”고 지적했다.
대통령 측의 막말 행보는 지난달 16일 영입된 김평우(72ㆍ사법시험 8회) 변호사로부터 주로 나왔다. 김 변호사는 22일 탄핵심판 제16차 변론에서 강일원 재판관에게 “청구인(국회) 수석 대리인 같다” “법관이 아니다”라고 대놓고 비난의 발언을 쏟아냈다. 대통령 측 조원룡 변호사도 강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낸 후 “권성동 소추위원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한 편이 돼서 심판 봐야 할 사람이 편 먹고 뛰는 느낌”이라고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심지어 광장에서의 여론전도 불사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4차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법조계 원로들이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탄핵 소추가 사기라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궤변을 폈다. 이달 1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15차 태극기집회에서는 “이 오만한 (헌법재판소) 법관들에게 무조건 승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헌재의 법을 지키고만 있으면 북한 인민이나 다를 게 없다”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올 경우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에 불복할 수 있는 빌미를 준 셈이다.
일반 국민도 아닌 법률가들이 이처럼 공공연히 불복 의사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탄을 금치 않았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헌재의 결정이 모두 옳다고 볼 수 없지만 헌재의 결정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조율하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이라며 “헌재의 결정을 무시한다는 것은 초법적인 것을 넘어 불법적인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김현(61ㆍ사법연수원 17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법률가는 어디까지나 법리로 접근해 재판관을 설득해야 하는데, 법리 논쟁을 넘어서 판결에 불복하겠다고 여론에 호소하는 것은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협은 상임이사회에 변호사의 품위를 지키지 않은 김평우 변호사에 대한 징계 안건을 올렸으나 ‘변호사의 변론권으로 봐야 한다’는 반대의견에 부딪혀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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