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을 빙자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살인죄가 인정됐다. 부산고법 형사합의1부는 어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 박모씨의 항소심에서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1심(징역 15년)과 달리 신체적으로 미성숙하고 방어능력이 취약한 아동의 특성을 고려해 살인의 고의성을 폭넓게 인정한 판결로, 유사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소풍날 아침 2,300원을 훔치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의붓딸 이모(당시 7세)양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두 차례, 1시간에 걸친 폭행으로 이양은 갈비뼈 16개가 부러지고 폐와 심장이 손상돼 끝내 숨졌다. 1심과 항소심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요 쟁점인 살인의 고의성을 두고는 판단이 달랐다.
1심은 흉기 미사용 외에도 박씨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머리는 몸통과 구분해 때렸고 출혈이나 호흡곤란 등 증세가 없어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고도 계속 폭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봤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뼈와 근육 등 신체가 온전히 발달하지 못한 7세 아동에게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옆구리 부위를 집중 가격했고, 1차 폭행 뒤 창백해진 피해자를 더 가혹하게 폭행한 점 등을 들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이번 사건은 역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피해자의 언니에게 죄를 덮어씌웠던 ‘칠곡 계모’ 사건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그 동안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일깨웠다. 만시지탄이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엄벌 기류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사후 엄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그러려면 온 사회가 훈육을 가장한 ‘이웃집 안방의 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 두 사건에서도 이웃이나 학교, 지역 아동보호기관 등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끔찍한 결과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핵심도 국가기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더 큰 피해를 막는 데 있다. 그러나 아동보호기관 증설과 상담원 확충에 필요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벌써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언제까지 일이 터지면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제2, 제3의 울산ㆍ칠곡 사건을 막기 위해 정부의 각성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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