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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돈이 되는 이야기

입력
2017.12.01 10:3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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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은 유럽 여행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들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15번째 생일에 처음 바다 위를 구경하던 인어공주는 항해중인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왕자가 탄 배가 침몰하자 그를 구해준다. 왕자 곁에 머물고 싶은 인어공주는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고 대신 사람의 몸을 얻어 벙어리가 된 채 왕궁에 들어간다. 생명의 은인인 인어공주를 알아보지 못한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자 인어공주는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물거품이 된다는 안데르센의 동화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로렐라이 언덕은 라인강 기슭의 바위 언덕인데, ‘기다림의 바위’라는 뜻이다. 민요처럼 애창되는 하이네의 시로 유명하다. 이 바위에서 요정이 노래를 부르면 아름다운 모습과 노래 소리에 반해 뱃사람들이 넋 놓고 바라보다 난파하곤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강가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한 언덕인데도 관광명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믿거나 말거나인 전설 때문이다. 오줌싸개 동상도 브뤼셀의 명물이지만 특별한 게 없다. 60cm 남짓한 작은 동상이지만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브뤼셀을 침략했을 때 가져갔다가 나중에 화려한 후작 옷을 입혀 돌려보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막상 실제로 보면 별게 아닌지라 우스갯소리로 이 셋을 유럽 3대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이야기가 있는 명소는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에펠탑에도 이야기가 있다. 조립식 철탑 에펠탑은 프랑스 교량기술자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탑으로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졌다. 지어질 당시 파리 경관을 해치는 흉물스런 철골덩어리란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당대 최고 작가 기 드 모파상도 에펠탑을 반대한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모파상은 에펠탑이 지어진 후 매일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에펠탑이 싫어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에펠탑 내 식당밖에 없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파리의 생 제르망 데프레 지역은 카페 거리로 유명하다. 특히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 이 두 곳은 가격이 더 비싼데도 줄을 서는 카페다.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철학자 사르트르와 드 보부아르를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이 드나들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커피 중 가장 비싼 커피는 코피루왁이다. ‘고양이 똥 커피’라고도 불리는데 인도네시아 여행객의 쇼핑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특산품이다. 원래 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열매를 먹고 배설한 배설물 중 소화되지 않은 생두를 세척한 커피다. 소화기관을 거치며 체내 효소, 아미노산 등이 작용해 독특한 향과 맛이 가미된다. 홍대의 고급 카페나 고급 호텔 커피숍 등에서 파는데, 한 잔에 4만 원 정도 하는 그야말로 고가의 커피다. 코피루왁이 비싼 이유는 뭘까. 사향고양이의 배설을 통해 생산되므로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희소성과 독특한 향 등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사향고양이 스토리가 만들어낸 문화적 가치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가치의 원천이고 그래서 돈이 된다.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많이 활용되는데 이를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문화상품을 구매하면서 스토리를 소비한다. 코피루왁을 마실 때 소비자는 사향고양이 이야기를 소비하고,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온 관광객은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을 소비한다. 이야기 하나가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것은 해리포터를 통해서도 확인한 바 있다. 가난하던 무명작가 조안 롤링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단번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세계 500대 갑부에 들었다. 이것이 바로 돈이 되는 이야기의 힘이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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