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7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피의자로 불러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조사했다. 두 사람 모두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권한을 넘어 타인의 권익을 침해한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기둥은 아니지만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 입학과 함께 국민 공분을 산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이를 앞서서 지켜야 할 정치 권력이 침해했다는 점에서 문화계 인사들은 허탈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그동안 블랙리스트 작성에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관련자 증언과 자료를 종합하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한 두 사람이 이와 무관할 가능성은 낮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1년여만에 쫓겨나듯 물러난 유진룡 전 장관을 비롯한 문체부 공직자들은 한결 같이 청와대에서 보내온 명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위원회 등 문체부 산하 기관이 이에 따라 특정인을 지원 배제했다는 정황도 자료와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런 혐의로 이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구속됐다.
특검은 이날 두 사람에게 제기된 의혹 중 자료가 확보된 부분을 살필 것이며 대질 조사도 진행한 뒤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조 장관의 경우 2014년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거나 간여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다고 하다가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을 바꾸어 이미 위증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문화예술계 좌파의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일지 메모와 관련 증언 등에 비추어 김 전 실장의 혐의도 짙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 리스트의 존재를 알았다는 보도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블랙리스트 수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약 1만명에 이른다는 블랙리스트에 항의해 문화예술인들은 이미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고 지난해 11월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의 텐트에서 엄동을 나고 있다. 김기춘ㆍ조윤선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내기 위해 ‘블랙리스트 법률 대응 모임’까지 구성했다. 특검이 엄정한 수사로 이런 문화예술인들의 울분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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