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녀를 둔 엄마이자 만36세의 노장 마라토너. 안드레아 듀크(미국)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라톤 선수로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의 그는 올림픽 미국 대표팀 선발을 꿈꾸며 나이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선수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듀크의 삶은 마라톤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의 삶은 매우 평범했다. 고교 시절 달리기 최고상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에 들어가거나 유명 마라톤 대회에서 메달이나 트로피를 딴 적은 없었다. 몇 해 전 두 아이와 함께 1마일(약 1.6km)을 7분에 주파한 것이 전부다.
듀크의 삶을 바꾼 것은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였다. 그가 워싱턴DC 조지타운 대학에서 석사로 재학 중이던 2001년 9월11일, 미 국방부 서쪽에 충돌한 아메리칸에어라인 77편의 잔해물은 듀크의 학교까지 까맣게 뒤덮었다. 그는 그날 이후 잠을 잘 수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몽유병에 시달리던 그에게 대학원 지도교수이던 다이아나 오웬 박사가 뜻밖의 제안을 한 것. “한 번 뛰어보자”라고. 이후 달리기를 통해 듀크는 스트레스와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스물 세 살인 2002년 듀크는 처음으로 42.195km 풀코스마라톤에 입문했다. 4시간35분21초, 참가자중 838위의 초라한 기록이었다. 후에 그는 “정말 싫었다. 경기가 끝나고 한참 울었다”며 “그날 저녁 타르트와 케이크를 배불리 먹으며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라톤은 잊혀졌다. 그 사이 알라바마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스포츠 매니지먼트 박사 학위를 딴 듀크는 비영리재단 이사를 역임했다. 2008년과 2012년 아들과 딸도 출산했다. 현재까지도 그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
듀크를 다시 달리게 한 원동력은 아들이었다. 2012년 딸이 태어난 지 한달 남짓 되었을 무렵 세 살 난 아들 노아가 사고로 대퇴골을 다쳤다. 의사는 아들이 평생 달리지 못할 것이며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듀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이듬해인 2013년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스의 마라톤에 도전했다. 기록은 3시간7분8초. 첫 마라톤 기록보다 훨씬 앞당겨진 수치다. 듀크는 “힘이 들 때 아픈 아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듀크의 마라톤에는 탄력이 붙었다. 그는 2014년 시카고 마라톤에서는 당초 목표였던 2시간50분보다 빠른 2시간41분05초로 1만8,000명이 넘는 여성 마라토너 중 19위에 올랐다. 2014년 락앤롤 뉴올리언스 마라톤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올림픽 미국 대표를 꿈꾸며 달리고 있다.
듀크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37세 생일을 2주 앞둔 내년 2월 14일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LA마라톤 출발선에 선다.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아들은 엄마와 함께 달리며 올해 5km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다.
“왜 성공적이고 편안한 삶 대신 (달리기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듀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음… 안되나요? 만약 시도한 것을 실제로 해낼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놀라운 길을 선택한 거겠어요.”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