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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예찬과 금기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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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예찬과 금기의 자취

입력
2015.06.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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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WIEN)은 특히 와인 품질이 좋다. 수출보다 내수가 많아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오스트리아 빈(WIEN)은 특히 와인 품질이 좋다. 수출보다 내수가 많아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사교와 친교의 장에서 술만큼 위력적인 매개물이 또 있을까. 모든 축하, 기념, 한탄의 상에 술과 잔이 빠지지 않는 것은 취기가 주는 해방과 도취감 때문일 터. 백약(百藥) 중 으뜸이자, 때로는 원수이며, 교회에서는 ‘주님의 피’이기까지 한 술의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뉴질랜드 출신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칼턴대 역사학과 교수인 로드 필립스의 ‘알코올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풍경 속 술의 자취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는 술과 종교, 술과 계몽, 계급과 질서 등 굵직한 주제 아래 시대별 술의 모습을 설명한다.

'알코올의 역사' 로드 필립스 지음. 윤철희 옮김. 연암서가 발행ㆍ568쪽ㆍ2만3,000원
'알코올의 역사' 로드 필립스 지음. 윤철희 옮김. 연암서가 발행ㆍ568쪽ㆍ2만3,000원

인간이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9,000년 전. 하지만 인류 첫 취기의 경험은 그보다도 수 만년 전이다. 익은 과일이 자연 발효되며 3~5%에 달하는 알코올성분이 생성됐고, 인류가 이를 마셔왔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전 계층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술의 양대 산맥은 단연 와인과 맥주다. 비축해 둔 곡물로 1년 내내 만들 수 있었던 맥주와는 달리, 쉽게 재배하고 보관하기 어려운 포도로 만든 와인은 희소성 때문에 꽤 오랫동안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분류됐다.

술이 주는 몽롱함과 혼미함을 맛본 사람들은 이내 술을 영적이고 종교적인 물질로 이해했다. 그리스도교는 술을 하나의 상징이자 의례의 중심적 물질로 격상시킨 데 비해, 이슬람은 술을 철저히 금지하는 등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술에 의미를 부여했다.

곳곳에서 무절제, 폭력, 나태 등을 유발하기도 한 술은 다양한 시대에서 금주령을 유발했다. 하지만 여성과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주정뱅이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탄압이 시도되는 등 술에 대한 비난과 핍박이 늘 온당했던 것은 아니다.

필수 물자, 지배수단, 화폐 등으로 기능해 온 술의 역사를 펼쳐 낸 저자는 우리가 ‘포스트 알코올 시대’라 할 만한 술 저소비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뜻밖의 전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20세기 이후 많은 서구국가에서 술 소비량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특히 젊은 세대 앞에는 술을 대신할 더 유혹적인 카페인과 강장제가 즐비하다는 이유에서다.

여전히 폭탄주 레시피를 준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과일향 소주의 풍미에 새로 매료되기까지 한 한국독자들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를 결론이다. 우리 삶에서 연애와 영업과 스포츠가 절멸하지 않는 한, 술은 여전히 가장 사랑 받는 상품이자 가장 논쟁적인 상품의 지위를 누릴 것이 자명해 보이기에.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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