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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저유가의 축복을 현실화하려면

입력
2015.02.0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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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유가가 반등해 한때 배럴당 50달러 위로 올랐으나 곧 주저 앉았다. 가까운 시일 내 유가가 지난해 초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유가가 급격히 떨어진 원인이 일시적 수요감소 때문이 아니어서다. 이는 세일가스 출현 같은 공급확대 외에도 전세계적으로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발생한 구조적 변화의 결과다. 국제유가 선물시장에서는 2020년대나 돼야 배럴당 90달러 선에 올라설 것이라 점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까가 대부분 나라의 고민이었다면, 이젠 공급 초과의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느냐가 숙제가 된 것이다.

장기 침체가 이어지는 국내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저유가 시대의 개막은 단순한 경제회복을 넘어 재도약의 기회이다. 하지만 유가 하락만으로 상품 가격이 내려가고 소비가 늘어나는 시장원리가 작동할 가능성은 낮다. 특히 수요 부족에 따른 이윤 하락에 시달리는 국내 기업들이 유가 하락분을 가격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넘겨주기보다는 수익성 회복을 위해 가격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미래 불안감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 소비자들이 더 많이 물건을 살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정부가 나서 기업들에게 제품가격을 낮추라고 압력을 넣는다고 해도 별효과가 없을 게 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유가 호기를 이용해 화석연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데 투자를 집중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올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전세계에서 전년대비 20% 성장이 기대될 만큼 유망한 분야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급변하는 에너지 상황에 대한 특집기사를 게재, 각국 정부가 이 기회를 잡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유가가 떨어진 만큼 세금을 올릴 것을 제안했다. 특히 탄소세 강화를 통해 환경문제 악화를 해결하고 청정연료를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평소 이 잡지의 논조가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며 세금을 올리는 것에 부정적이었음을 감안하면 눈여겨볼만한 주장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휘발유나 경유 등에 부과되는 세금이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이어서 더 올릴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탄소세는 그렇지 않다. 올해부터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시작했는데, 벌써 관련 업체들이 배출권 할당을 취소해달라는 집단소송에 나서는 등 진통이 크다. 당장의 소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정부가 물러선다면 뼈아픈 실수가 될 것이다.

또 하나 서둘러야 할 분야는 전력산업 개편이다. 이제까지 전력은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 원자력발전소 등 대형 발전시설을 짓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도시로 송전하는 체제로 운영됐다. 게다가 일년에 며칠뿐인 전기 사용피크를 기준으로 발전용량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낭비도 크다. 더 이상 이런 전력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밀양사태에서 보듯 송전탑 건설비용이 크게 늘고 있고, 수명이 다한 원전 재운영과 원전 방사능폐기물 처리도 해결방안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다른 나라들은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기업과 가정에 사용피크 시간 전력회사가 전기공급을 중단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기회사에 되팔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원전 등 발전소 건설을 최소화하고 송전탑도 줄이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전력망이 점점 더 지역화하고 인터넷과 연결되고 있다”고 요약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막 제주도 3,000세대를 상대로 실증사업을 끝낸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으니, 스스로 정보강국이라 자부하기 부끄러운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저유가 시대의 도래를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시장개방을 시작할 때와 비견될 만큼 나라 전체를 개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평생 한번 만날까 말까 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도 낡은 패러다임에 매달려 운전 30년이 넘은 원전을 재가동하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일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클린에너지 분야 육성에 정책과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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