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백제 자손” 발언 눈길
방한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양국관계 변화 없는 한 힘들 듯_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현행 평화헌법 ‘호헌파’의 상징적 존재다. 선왕인 히로히토(裕仁ㆍ1926~1989) 와 달리 한국에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때문에 그가 양위 후 한일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지 주목된다.
연합국총사령부(GHQ) 시절 미국인 가정교사로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은 그는 25세 때인 1959년 최초로 평민출신인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다. 그가 일본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소탈한 면모도 한 몫 하지만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준 평화행보와 무관치 않다.
그는 특히 1989년 즉위 이후 동남아시아, 중국, 팔라우 등을 방문하면서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 행보를 이어갔다. 방문지에서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기 위해 일본인병사 위령비와 함께 반드시 상대국 위령비도 참배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전후 최초로 사이판을 방문해 한국인 위령탑에 참배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2001년 12월 생일 회견 때 그는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어 한국과 연(緣)을 느낀다”고 말해 한국인의 눈길을 끌었다.
때문에 양국에서는 일왕의 방한이 여러 차례 거론되기도 했다. 2009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왕의 내년(2010년ㆍ경술국치 100년) 방한이 양국 관계의 거리감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고 같은해 12월 일본의 집권 민주당 실력자였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이 “한국 국민이 환영해 준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의 급격한 변화가 없는 한 상왕 입장에서도 방한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더욱이 일왕의 방한은 일본 정부의 결정사항이어서 과거사사죄 알레르기가 심한 우익진영이 용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일본의 대체적 관측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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