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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낙서로 불붙은 시리아 내전 4년 반… 美·러 대결로 확대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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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낙서로 불붙은 시리아 내전 4년 반… 美·러 대결로 확대 조짐

입력
2015.09.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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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아사드 정권과 반군

아랍의 봄 영향 체포 학생 석방 시위…반정부 세력 무장하며 내전 돌입

22만명 사망, 인구 절반이 떠돌이

주변국 알력 싸움

정권과 가까운 러 군사 개입 정황

공습 재개하려는 서방과 충돌 우려

정부군과 반정부군간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주택가를 한 아버지가 딸을 안은 채 빠져 나오고 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정부군과 반정부군간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주택가를 한 아버지가 딸을 안은 채 빠져 나오고 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우리는 유럽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시리아 내 전쟁만 멈춰 주세요. 그게 다예요.”

시리아 난민 키난 마살메흐(13)가 지난 4일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에서 밝힌 간절한 소원은 최근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난민 위기의 핵심을 정확하게 요약한다. 시리아는 5년째 내전에 시달리면서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앰네스티 조사결과 전체 인구 2,300만명 중 1,160만명이 전쟁을 피해 난민이 됐다. 시리아 국민 중 절반 이상이 난민이 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 비극적 내전은 10대 학생들의 낙서에서 시작됐다. 2011년 3월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기운이 중동 전 지역으로 확산될 무렵, 10대 학생들이 시리아 남부 소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었다가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됐고 시리아 정부는 기갑부대를 투입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강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 규모로 번졌다.

당초 평화 시위로 시작했던 반정부 진영이 점차 무기를 갖추고 자유시리아군(FSA)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본격적인 내전으로 돌입했다.

이후 정부군의 잔혹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3년 8월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린가스 공격으로 민간인 수백명이 숨지는가 하면 정부군이 민간인 거주지역까지 ‘통폭탄’(드럼통에 폭약과 쇠붙이 등을 넣어 만든 살상 무기)을 무차별 투하했다. 살상뿐 아니라 고문과 성폭행 등 다양한 전쟁 범죄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다.

유엔에 따르면, 수도 다마스쿠스와 제2도시 알레포를 놓고 벌인 정부군과 반군의 일진일퇴의 공방으로 2013년 6월까지 2년 동안 9만명이 숨졌고 2014년 8월에는 총 사망자 수가 19만1,000명으로 치솟은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까지 만 4년 반 동안 숨진 인원은 모두 22만명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이미 지옥이 돼 버린 고향을 떠난 1,160만 난민 가운데 760만명은 시리아 곳곳을 떠돌고 있고, 400만명은 국경을 넘어 터키(190만)와 레바논(120만), 요르단(65만), 이집트(25만), 이라크(14만) 등으로 떠났다. 이 가운데 2.6%(1만4,400여명) 정도만 국외에 재정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국들은 쏟아지는 난민들을 감당하지 못한 채 국경을 걸어 잠갔고, 갈 곳이 없는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시리아, 서구 제국주의가 잉태한 비극

시리아 내전은 부족간 갈등, 종파 분쟁, 주변 국가들의 힘겨루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100년 전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무책임한 밀약이 원죄로 자리잡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승기를 잡은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일명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는다. 중동지역을 다스리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물러나면 이 지역을 ‘나눠 먹기식’으로 분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협상 결과 영국은 지중해와 요르단 사이 해안지역, 이라크, 요르단지역을 차지했고,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 시리아, 레바논을 가지기로 했다. 협상 과정에 이 땅의 주인인 아랍인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따라서 수니ㆍ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나 부족 문제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지역 국경은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다.

협정에 따라 시리아에는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수니파가 함께 살게 됐고, 수니파 중심도시 모술은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이라크로 묶이게 됐다. 또 프랑스는 기독교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시리아에서 레바논을 떼내고, 영국은 아랍에게 돌려주기로 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에게 주면서 오늘날 중동문제의 씨앗을 뿌렸다.

오늘 시리아 내전도 그 씨앗에서 발아한 것이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197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2대에 걸쳐 40년 넘게 집권을 했지만, 종파로 따지자면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한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다. 인구의 73%에 달하는 수니파는 내전 발발 후 대부분 반군 편에 섰다. 다른 소수 부족들은 각각의 이해득실에 따라 정부군, 혹은 반군을 따르면서 내전은 여러 부족이 복잡하게 얽힌 싸움으로 번졌다.

이 와중에 주변 국가들까지 개입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카타르 터키, 요르단 등이 같은 수니파인 반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시아파를 이끄는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는 정부군을 도와 반군 진압에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이란의 세 확장을 경계한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반 아사드’진영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자, 전통적으로 시리아 정권과 가까운 러시아가 정부군을 도우면서 미ㆍ러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 인근 항구에는 러시아 주둔군 시설과 중장비 등이 눈에 띄는 등 군사 개입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또 지난 6일 러시아가 군사 선발대를 시리아에 파견하면서 군용기 3대가 시리아 아사드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이동식 항공 관제시설도 시리아로 수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쟁연구소 군사전문가 크리스토퍼 하머는 “군수물자 지원 규모를 고려할 때 러시아가 대대적이고 적극적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경고를 보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1일 9ㆍ11 테러 14주년 행사에서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의 무장을 돕는 전략은 큰 실수”라며 “러시아가 결국 실패할 그런 전략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도록 미국이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내전을 틈타 세력을 키운 IS가 시리아 북부와 동부를 장악한 후 참수 등 잔인한 방식으로 민간인 수백명을 처형하면서 시리아 내전의 비극을 증폭시키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IS가 시리아 내 정부군 지역 중 주요 도로인 M5고속도로 인근 35㎞ 지점까지 진격했다”며 “IS가 고속도로를 완전히 장악할 경우 수백만명의 난민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M5고속도로는 다마스쿠스와 시리아 북서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척추’다. 지난 6일 저녁에는 IS가 시리아 중부 홈스 주에 있는 자잘 유전을 급습, 정부군과 격전 끝에 빼앗았다. 이미 IS는 이라크와 국경을 접한 동부 지역 유전을 다수 차지하고 군자금 모집 등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내전 공습으로 해결될까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에 놀란 유럽 국민들이 정부에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정부들은 난민 위기를 빠르게 위협적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 IS 퇴치를 위한 무력개입 확대의 명분으로 사용하려는 듯 보인다.

특히 세계가 시리아 난민 위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아일란 쿠르디’의 고향인 코바니가 IS 점령 지역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런 홍보전략은 효과를 발휘해 프랑스 국민 1,000여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1%가 ‘시리아 내 IS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공습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 동안 프랑스는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유엔의 위임이 있기 전까지 시리아 내 IS 공습에 참여하지 않겠다”라며 한발 물러 서 있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서방 정부들이 일제히 군사개입 확대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프랑스와 영국은 시리아 공습을 거론하고 있다. 프랑스는 8일부터 라팔 전투기를 동원해 정찰 비행을 시작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시리아 공습 재개를 예고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난민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시리아 대통령과 IS에 있다”며 구체적 공격 타깃을 명시했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도 “공습 범위를 현 이라크에서 시리아까지 넓히기로 했다”며 시리아 문제에 무력 개입 의도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공습을 재개한다고 해서 단기간 내 시리아 비극을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반응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러시아와 이란의 눈치를 보느라 시리아 내전의 핵심문제인 알아사드 정권 처리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등 서방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는 여전히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된 시리아에 폭격을 강화한다고 해서 IS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며, 반군들의 복잡한 내부사정을 감안하면 지상군의 직접 파견 없이 결정적 승기를 잡기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로서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한 시리아 국민들의 비극이 앞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고, 쏟아지는 난민문제도 단기간 내 해결되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여전히 지배적인 이유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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