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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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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순애보

입력
2017.10.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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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미니는 정글과도 같은 도로에서 유난히 빛나는 외모를 가졌다는 걸. 그래서 마초가 득시글대는 헬스클럽에 주차하기도 겸연쩍지만 그게 또 운전하는 맛은 기가 막혀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걸. 구형 미니를 보고 예쁘다고 “꺅꺅” 외마디 탄성을 지르다가 두어 시간 남짓 운전하더니 뭣 같은 승차감 때문에 내릴 때는 “악악” 비명을 내뱉던 여자들도 많았다는 걸. 결론부터 말하자. 광폭 행보를 보인 신형 미니 쿠퍼 S 컨버터블은 모두를 위한 전천후 챔프가 됐다는 걸. 이제는 안심해도 좋겠다.

미니는 잘 팔린다. 비키니가 어울리는 ‘귀요미’ 언니들이야 단박에 이해되지만, 가끔씩 도로에서 만나는 사내들은 모습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더구나 원자폭탄이 23차례나 떨어졌던 비키니 환초에 버금가는 강렬한 외모의 사내가 왜 미니를 탐내는 걸까? 비키니를 발명한, 그래서 교황청을 진노하게 만든 루이 레아르 또한 모르긴 몰라도 분명 미니를 좋아했을 거다. 작고 암팡진 푸조의 엔지니어였으니까. 환태평양 마셜 제도의 비키니 환초는 그렇게 슬픈 역사를 품었지만 미니는 미니다.

전통을 벗삼아 직업적 직무유기나 저지를 법하지만 미니 디자이너들은 아슬아슬하게 비난을 비켜나갔다. 당신과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변치 않을 미니 고유의 디자인은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인 요소가 꽤 많이 달라졌다. 옆에서 보면 달걀형 길쭉한 헤드램프가 정면에서 응시하면 태초의 원형이다. 로버 미니를 가져봤다면 단박에 깨닫는 동그라미 말이다. 좌우로 길쭉해졌지만 그릴 또한 고유의 형태를 유지한다. 범퍼 하단의 네모난 인테이크 홀은, 이를테면 덧니 같다. 좋아한다면 귀엽다고 씩 웃겠지만 싫어한다면 징그럽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포인트.

본디 뚜껑 없는 차는 태생적으로 낭만을 품었다. 게다가 구조적으로 아주 튼튼하다. 견고함의 차이를 예를 들자면 군용 A 텐트와 얇은 알루미늄 폴로 감싼 싸구려 1인 텐트의 맞비교와 같다. 금속을 제련하고 다루는 독일의 솜씨가 여실히 깃들어 있다. 바늘이 속도계의 끝을 향해 치닫는 순간에도 소프트톱의 형상은 바람 빠진 풍선은커녕 그 비싼 갈색병 미약을 처덕처덕 바른 피부마냥 팽팽했다. A필러의 끝에 맞물리는 세로 뼈대는 견고하고 소프트톱을 지지하는 가로 뼈대는 우직하다. 물론 차체 강성부터 완전 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차를 내돌려봐도 2세대 컨버터블의 서걱거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개인적으로 2세대 미니쿠퍼 S(R56)를 가장 좋아하지만 컨버터블만큼은 무조건 신형(F56) 모델을 추천한다. ‘오픈카’에 필수적인 요건인 강건한 차체를 갖췄기 때문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창문을 내리려고 센터페시아 아래 맨 왼쪽에 위치한 토글 스위치를 꾹 눌렀다. “아차, 신형 미니는 다른 차와 비슷하게 도어 암레스트에 창문 버튼을 달았지.” 혼잣말을 하면서도 몸의 기억력에 스스로 놀란다. 잊고 있던 추억을 찾아낸 기분이다. 10개월에 불과했지만 정말 좋아했던 미니였던 터라 한층 진하게 기억에 남았나 보다. 위트 넘치는 센터페시아, 손에 착 감기는 스티어링 휠, 루프를 여닫는 토클 스위치, 동그란 사이드미러를 통해 비춰지는 풍경까지 익숙한 그대로다. 그래서 미니다. 실용성을 강요하는 규제의 시대에, 잘 먹어 뚱뚱해지고 양약수술을 받아 턱은 길지만 미니는 미니다. 일단 난 BMW 고유의 기술로 만든 미니의 엔진부터 마음에 든다. 물론 오리지널 로버 미니를 닮은 마이크로 미니가 나온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미니’ 사이즈로 돌아서겠지만.

서울에서는 톱은 그대로 둔 채 달린다. 따뜻한 햇살과 쪽빛 바다가 어우러지는 남쪽에서 토플리스 차림을 즐길 거니까. 선루프 마냥 운전석 천정 부위만 슬라이딩 시키고는 복잡한 도심을 뒤로한 채 목적지를 향한다. 그런 계획을 스스로 깨뜨린 건 충남 공주에 이르러서부터다. 단풍철 행락객을 피해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고요한 숲길을 만나자 몸이 들썩거린다. 천천히 달리면서 톱을 벗겨냈다. 무척 빠르게 트렁크 부근에 차곡차곡 포개어 접히는 톱이 매력적이다. 자그마한 해치백을 바탕으로 꾸민 전통적인 소프트톱 방식은 거추장스러운 하드톱의 단점이나 4인승 쿠페의 소프트톱의 단점을 지워냈다. 그건 태생적인 구조가 품은 최고의 장점이다.

톱을 벗겨낸다는 특별함에는 알게 모르게 위화감이 들어선다.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과 그에 따른 부담감. 줄 세워놓고 평가하는 우리네 잣대가 자동차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미니 컨버터블을 살짝 궤를 달리한다. 가족들을 편안히 태우기 위해 미니를 고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만을 위한 아늑한 ‘코지’ 같은 공간을 위해서다. 철판을 외피처럼 두른 엇비슷한 네모난 상자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쾌락이다. 여기서 힌트 하나, 아이들은 미니 컨버터블을 장난감처럼 생각한다. 해치를 열고는 위에 걸터 앉아 자그마한 트렁크 안에 숨기 놀이를 즉각 고안해냈다. 구형 모델을 타던 수년 전에도 ‘아빠’ 미니라고 부르며 매번 즐거워했던 아이의 기억 속에 미니는 추억을 담는 소중한 가족이다.

고카트 냅다 몰고 달리는 재미야 말해 무엇하랴! 일단 알파벳 S가 붙었거나 JCW가 붙은 미니는 다분히 양면성을 지녔다. 게다가 낭만이라는 우산을 덧씌우고는 비 오는 날 ‘후둑’거리며 내달리는 즐거움마저 겸비했으니 팜파탈이 따로 없다. 자동차를 바라보며 단순한 이동의 수단과 자신을 드러내는 기제 사이에서 방황했다면 미니 컨버터블의 영역은 독보적이다. 타보면 안다. 이 글을 통해 고카트 미니의 순간 가속이 어떻고 핸들링 성향이 어쩌고 엔진 고회전 필링의 감동이나 최고시속의 영역에서 얼마나 안정감이 넘치는지 강변하고 싶지 않다. 추억의 오마주를 다시 만난 오늘은 감동의 주억거림으로 충분하니까.

미니를 사자마자 해야할 일은 런 플랫 타이어를 떼어내고 미쉐린 파일럿스포츠를 끼우는 것. 내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다. 떼어낸 순정 타이어는 외려 안전을 중시하는 오너들에게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아니던가? 휠까지 초경량 제품으로 바꿀 수 있다면 한층 좋겠지만 예전 구형 모델에 끼웠던 워크스 휠에 버금가는 제품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가만있자, 레이 엔지니어링에 미니에 맞는 규격 휠이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을 누비며 지갑을 여는 상상을 즐긴다. 행복한 고민이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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