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젊은이 급증, 히잡 등 금기 깨진 쿠웨이트 여성
원리주의 확대 주장하는 IS, 젊은 남성 스키니진 규제 시작
이란, 엄격한 법 적용으로 속도 조절… 쿠웨이트선 자유·개방 법제화 주장
미래의 무슬림 청년은 수염을 기르고 총을 든 모습일까, 아니면 청바지를 입고 스타벅스를 즐기는 모습일까.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믿고 따르는 이슬람은 세계 주요 종교 중 가장 젊은 종교다. 종교의 역사가 기독교나 불교 등보다 짧기도 하지만, 신도 중 20, 30대 비중이 가장 높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세계 주요 종교 신도 중 2010년 기준 15세 이하 인구 비율은 이슬람교가 34%로 가장 높고 힌두교(30%) 기독교(27%) 유대교(21%) 불교(20%) 순이었다. 젊은 신도의 비중이 높은 만큼 이슬람교는 미래의 변화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교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젊은 무슬림들은 서방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세속화되는 경향과 서방과 기독교 문물을 철저히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원리주의자들로 양극화하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이슬람교가 어떻게 변화할지 점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즐기느라 기도시간 줄어드는 젊은이들
지난달 28일 오후 쿠웨이트 최대사원 그랜드모스크 주변에서는 코란을 읊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모스크 주변 20, 30대 젊은이들은 기도시간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저녁을 해결하거나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친구를 기다린다던 마흐무디 알리(28)는 “어렸을 땐 기도시간에 맞춰 부모님을 따라 모스크에 들렀지만 지금은 이 시간에 볼일을 보는 편이다”라며 “기도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드리는 것이 더 실용적이고 진정성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웨이트의 기도 시간은 유동적이어서 매일 신문 1면에 ‘오늘의 기도시간’이 실리지만, 이를 챙겨보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여성에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운전을 금할 것이란 이슬람 국가에 대한 선입견도 깨졌다. 며칠 뒤 찾은 쿠웨이트 남부 아샵 알바흐리 거리에는 미용실과 손톱ㆍ피부 관리실은 물론 여성 전용 피트니스센터까지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나오는 젊은 여성들은 몸에 딱 달라 붙는 바지와 민소매 셔츠, 힙합 모자를 쓰고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짧은 치마와 20㎝가 넘는 구두를 신고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맨 채 슈퍼카에 올라타는 여성도 눈길을 끌었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로 꼽히는 이란에서도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유 분방하게 생활하는 젊은 무슬림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에 이란의 부유층 젊은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서양인들처럼 자유분방하게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올려 화제가 됐다. BBC에 따르면 이들은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에 ‘테헤란의 부자 아이들’(Rich Kids of Tehran)이라는 계정을 운영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과시했다. 젊은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넓은 수영장 라운지에 서 있는 사진이나 수억원 짜리 슈퍼카에 기대 있는 젊은 남성, 쌓여있는 술 앞에서 구부리고 앉아있는 이들의 사진 등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수도 테헤란의 자택, 개인정원 등에서 사진을 찍고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사진을 올린다. 이들이 올린 술 사진 때문에 이란 내 부유층들 사이에서 음주가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란은 술을 사고 파는 행위를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지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음주 인구가 크게 늘고 있어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2013년 채택된 이슬람 형법 265항에 따르면 술을 마셨을 경우 남녀 상관 없이 태형 80대의 처벌을 받게 되지만, 이러한 규제도 확산하는 음주 문화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란 경찰청은 지난 2013년 이란 내 알코올 중독자가 약 20만명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지난해 테헤란대 의과대에 국영 알코올중독 치료재활센터를 개설해 중독자들을 따로 관리하기로 했다.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최근 치료센터에 입원한 알리레자는 현지 언론 이란와이어와 인터뷰에서 “알코올 중독을 끊어내지 못하고 숨진 친구를 3명 봤다”며 “무조건적으로 음주를 막는 낡은 정책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라고 전했다.
서구문화가 확산되면서 중동 젊은이들의 신앙심도 약화하고 있다. BBC는 최근 다큐멘터리 ‘혁명의 아이들’에서 전체 무슬림 중 20, 30대의 사원 출석률이 가장 낮았다고 전했고,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인 70%가 기도에 무관심하고 2% 미만이 금요예배에 참석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청바지도 금지하는 젊은 원리주의자들 급증
반면 구성원 중 70% 이상이 20, 30대 젊은이인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점령지에서 이슬람 원리주의를 확대하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여성들은 부르카(히잡의 한 종류로 눈만 내놓고 전신을 가리는 형태)착용과 할례 등 가혹한 율법을 강요 받고 있고, 남성들에게도 정숙한 차림이 강제되고 있다. IS 활동 중심지인 시리아 북부 락까에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것도 금지된다.
반(反) IS 인권단체 ‘락까가 참살당하고 있다’(RBSS)는 4일 텔레그래프에 “IS가 젊은 남성들이 스키니진을 입는 것을 규제하기 시작했다”며 “이 규정을 어기는 남성은 최소 열흘 간 구치소에 구류되고 풀려나려면 정신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고 전했다. 락까에 거주하는 현지인 자셈은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범죄가 됐다”며 “IS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이와 관련해 다른 이들과 토론한다면 신의 율법을 어긴 혐의로 체포된다”고 호소했다.
앞서 IS는 점령지 내 여성들이 IS 관할지를 벗어나선 안 되며 모든 여성은 후대를 생산·양육하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은 9세부터 결혼할 수 있고 여성의 삶은 남편과 아들 그리고 종교에 귀속돼 있다. 여성들은 사회 활동을 하는 대신 집에 머물려 가족을 돌보는 게 이상적이고, 지하드(이슬람 성전)에 참여할 남자가 없어 여성이 나서야 할 때 혹은 가족이 아파 돈벌이를 해야 할 때에만 집밖 활동에 나설 수 있다.
IS는 원리주의에 입각한 여성 교육체계도 강제하고 있다. 7∼9세 소녀들은 종교와 이슬람 법학, 아랍어 읽기와 쓰기, 기초과학 교육을 받는다. 10∼12세가 되면 종교 교육이 강화되고 음식과 의복 만들기 등 가사 교육에 집중한다. 13, 14세에는 이슬람 율법(샤리아) 교육에 집중하면서 이슬람의 역사, 선지자 무함마드의 삶 등을 배운다. 소녀들은 15세가 된 때부터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IS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국가의 젊은 무슬림들도 정통 이슬람에 보다 가까워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3년 전 사우디에서 쿠웨이트로 와 일하고 있다는 한 전자업체 직원은 “한 사우디 단체가 생일에 케이크와 촛불을 사용하는 등 서양의 방식을 따르는 것을 막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봤다”며 “해외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그들이 다른 문화의 단점들을 발견하면서, 오히려 근본주의로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각국 정부, 가치 충돌에 고민 늘어
젊은 무슬림들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자 이슬람 국가들의 고심은 한층 깊어졌다. IS 창궐로 원리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퍼진 탓에 이슬람 율법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자유주의가 몸에 벤 젊은이들을 묵인하기도 쉽지 않는 것이다.
이란정부는 자유ㆍ개방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쪽을 택해 엄격한 법 적용을 추진하는 중이다. 이란은 지난해 미국 가수 퍼렐 윌리엄스의 곡 ‘해피’(Happy)를 재해석한 뮤직비디오를 올린 남녀 7명에게 히잡 착용을 하지 않는 등 공공 순결을 해쳤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운전을 금지하는 이슬람 규율에 항의하기 위해 국경 근처에서 차를 몰며 영상을 찍어 올린 한 이란 여성도 며칠간 당국의 조사를 받게 했다. 사우디도 종교 경찰을 활용해 파티를 하거나 서양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연행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쿠웨이트에서는 오히려 자유ㆍ개방화를 도모하는 법이 발의되는 등 변화 흐름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카 커지고 있다. 나빌 파디 의원은 올 1월 콘서트장이나 축제에서 춤 추는 것을 금하는 법 조항을 폐지하고 음주를 합법화할 것을 주장했다. 나빌 의원은 암시장에서 술이 40달러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쿠웨이트가 즐거움이 없는 나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쿠웨이트에서 만난 알리는 “일부 세력이 원리주의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무시하는데, 같은 젊은이로서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 든다”며 “젊은 시각으로 종교를 소화하고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발전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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