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정 기자

등록 : 2016.06.10 16:27
수정 : 2016.06.10 16:27

“무성애는 인간의 다양한 표현 중 하나일 뿐이죠”

11일 퀴어문화축제 참가 계기로 공개활동 나서기로

등록 : 2016.06.10 16:27
수정 : 2016.06.10 16:27

퀴어문화축제 첫 참가하는 무성애자 프로젝트 A-LOG

“동성애처럼 비정상 취급 받아… 성관계가 사랑의 필수 아닐뿐”

무성애를 상징하는 A(Asexual) 모양의 배지. 무성애자들은 케이크를 자신의 성적 지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상대와 성관계를 하는 것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케이크를 먹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A-LOG 제공

“고교 시절 친구들과 각자의 성적(性的) 환상을 얘기하다 ‘멋진 사람과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말하니 ‘그게 다야?’라고 되묻더군요.

애써 생각해봤지만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어요. 제겐 그게 가장 좋으니까요.”

10일 만난 무성애자 ‘케이’는 자신의 경험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케이는 무성애자 프로젝트 팀 에이로그(A-LOG)의 멤버다. 무성애자는 말 그대로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불감증 환자를 지칭하거나 성적 관계를 거부하는 부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성애자 중에는 연애를 하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다. 다만 성관계가 사랑의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무성애자들이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릴 ‘2016 퀴어문화축제’에 행사 17년 만에 처음 참가한다. 케이씨는 “무성애는 인간이 표현하는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한국사회는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무성애도 비정상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아직 연애를 덜 해봐서 그렇다거나 금욕주의로 오해하는 것은 그나마 가벼운 편견에 속한다. 어떤 이는 무성애자들의 신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그들의 정체성을 질병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반응은 무성애를 과거 성폭력 피해 등으로 생긴 정신적 상처로 보는 것이다.

어렵사리 참가를 결심했지만 처음부터 용기를 내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무성애자들 사이에 퀴어축제에 참가하자는 얘기는 2012년부터 나왔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대부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활동해 온데다 각자 생업이 있어 따로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중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무성애자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올해 2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성애자가 커밍아웃(성정체성을 공개하는 일)을 한 뒤 벌어진 사건들, 무성애자 커플이 우연한 계기로 결혼에 골인하면서 준비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 등을 엮어 책을 내자는 논의가 무르익었다. 출판 자금은 크라우드펀딩(대중으로부터 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충당했다. 에이로그 팀원 17명은 퀴어축제에서 무성애자들이 직접 쓴 최초의 책 A-LOG Book을 공개할 예정이다. A-LOG란 ‘무성애’를 뜻하는 영어단어 ‘asexual’과 log(기록)를 결합한 것이다.

케이씨는 에이로그 프로젝트를 통해 소개하는 이야기가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다소나마 걷어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어딘가에서 정체성 문제로 혼자 끙끙 앓고 있는 누군가에게 ‘여기 무성애자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바람도 담겨 있다.

“주변에서는 무성애자에게 ‘성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해’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 생김새가 모두 다른 것처럼 무성애를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 들이는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우리사회의 건강한 지표가 아닐까요.”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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