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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새로운 ‘골프여제’탄생, 전인지

입력
2016.09.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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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가 우승 트로피를 앞에 둔 채 점프하고 있다. KLPGA 제공
지난해 10월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가 우승 트로피를 앞에 둔 채 점프하고 있다. KLPGA 제공

한국 골프 역사에서 1998년은 특별한 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오픈에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한 것을 계기로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 골프가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선 해이다.

박세리를 비롯한 김미현과 박지은 등 ‘1세대 트로이카’의 활약은 한국 골프의 전성기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들의 활약상을 보며 자란 1988년 전후생을 일컫는 이른바 ‘세리 키즈’들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무대를 휩쓸며 여자 골프를 한국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한국 여자 골프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신지애 선수를 비롯해 최연소 명예의 전당 헌액자 박인비와 오지영, 김인경, 이선화, 서희경, 지은희, 김송희, 김하늘, 최나연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여자 골프계에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세리 키즈들의 전성기가 지나가는 가운데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슈퍼스타가 탄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8일(현지시간)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을 제패한 전인지 선수가 주인공이다. 4라운드 합계 21언더파 263타로 정상에 오른 그의 기록은 LPGA 투어 메이저대회 사상 최소타다. 24년 동안 깨지지 않던 대기록으로, 박세리는 물론 타이거 우즈도 올라서지 못한 고지에 올라섰다.

골프 역사의 새 이정표를 찍은 그는 박세리와 박인비의 뒤를 이을 새로운 ‘골프 여제’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작년 8월 열린 'BOGNER MBN 여자오픈' 1라운드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전인지 선수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전인지 선수 페이스북
작년 8월 열린 'BOGNER MBN 여자오픈' 1라운드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전인지 선수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전인지 선수 페이스북

‘수학 영재’에서 ‘골프 신동’으로

1994년 8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전인지는 12세때 미적분을 풀고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수학 영재’다.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친구가 코치로 일하는 골프연습장에 간 것이 계기였다. 아버지는 “3시간 동안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1,000번 가까이 스윙 연습을 하는 지독한 모습을 보며 둘째 딸 인지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훗날 ‘잘 나가던’ 사업체를 넘기고 딸의 뒷바라지에 나설 만큼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중학교 때 골프 치기 좋은 제주도로 이사 갔고 고등학교는 신지애 선수의 모교로 알려진 골프 명문 전남 함평골프고에 진학시켰다.

부모의 노력에 힘입어 전인지는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한 지 9년 만인 2013년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지난해 전인지 선수가 왼쪽 발 부상을 당한 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그는 "많이 아프지만 냉찜질과 침 치료 후 가라앉았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전인지 선수 페이스북
지난해 전인지 선수가 왼쪽 발 부상을 당한 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그는 "많이 아프지만 냉찜질과 침 치료 후 가라앉았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전인지 선수 페이스북

“진짜 물건이 나타났다”

데뷔 초기 ‘슈퍼 루키’ 김효주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전인지는 2013년 치러진 한국여자오픈에서 김효주를 제치고 짜릿한 역전 우승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프로데뷔 3년차인 지난해는 그야말로 ‘전인지의 해’였다.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 등을 휩쓸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초청을 받아 출전한 2개의 메이저 대회(월드레이디스 살롱파스컵, 일본여자오픈선수권)에서 모두 우승을 하고 LPGA 메이저인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 시즌에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진기록을 세우며 세계 골프계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LPGA 진출 첫 시즌인 올해에도 돌풍을 이어갔다. 신인인데도 별다른 적응기간이 없이 초반에 출전한 두 대회에서 모두 ‘톱3’를 기록했다. LPGA 투어 공식 홈페이지는 “진짜 물건이 나타났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 같은 활약 덕분에 전인지는 라이벌인 김효주를 누르고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공동 13위에 그쳤다.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그는 올림픽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마음으로 출전한 올해 마지막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나흘 연속 선두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미국에서 2승을 모두 메이저대회를 통해 이뤄냈다.

전인지 선수가 지난해 5월 경기 이천 휘닉스스프링스GC에서 열린 E1 채리티 오픈 2015 파이널 라운드 9번홀에서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KLPGA 제공
전인지 선수가 지난해 5월 경기 이천 휘닉스스프링스GC에서 열린 E1 채리티 오픈 2015 파이널 라운드 9번홀에서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KLPGA 제공

어떤 상황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미스터리 골퍼’

미국의 스포츠전문 채널 ESPN은 에바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를 가리켜 “완전체 선수”라며 “박인비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세계 여자 골프계는 최근 몇 년 사이 호주의 한국계 선수 리디아 고와 태국의 쭈타누깐,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 등 스타성이 넘치는 90년 중후반생 선수들이 앞다퉈 등장하고 있다.

이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전인지는 절대적인 강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압도적인 장타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아이언샷이나 퍼팅이 남달리 빼어나지도 않았다. 지난해 그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휩쓸 때 장타 부문 10위, 아이언샷 정확도 4위, 평균 퍼팅은 10위에 그쳤다. 하지만 평균타수는 1위였다. 올해 LPGA투어에서도 장타 부문 66위, 아이언샷 정확도 18위였지만 평균타수는 리디아 고에 이어 두 번째다.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어느 것 하나 밀리지 않고 모든 클럽을 두루 잘 다루는 점이 전인지의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코스가 어려운 메이저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통산 13승 가운데 절반 이상인 7승을 메이저대회에서 달성해 ‘메이저 퀸’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인지의 또 다른 장점은 22세라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인성이다. 그는 샷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상냥하고 착한 미소를 잃지 않아 ‘미스터리 골퍼’로도 불린다.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는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며 “그의 성품은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인지는 골프를 즐길 줄 안다. 그는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많은 갤러리의 시선과 한국 팬들의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긴장감이 없으면 지루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큰 경기에 특히 더 강한 정신력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인성까지 슈퍼 스타의 요소를 두루갖춘 전인지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박세리와 박인비를 잇는 걸출한 한국 여자 골퍼의 탄생”이라고 평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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