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계 소수민족으로 차별
군부 “무장세력 토벌” 명분
살인ㆍ성폭행ㆍ방화 잇단 만행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상대로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군부가 무장세력 토벌을 명분으로 방화와 살인, 약탈 등을 일삼고 있어 이미 수천명의 난민들이 안전지대를 찾아 인근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국제사회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4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유엔난민기구(UNHCR)의 방글라데시 지역 책임자인 존 매키식은 “미얀마 군부가 라카인주의 로힝야족을 학살하는 것은 물론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집을 불태우며 인접국 방글라데시로 내쫓고 있다”며 “로힝야족을 완전히 몰아내는 ‘인종 청소’를 감행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살고 있는 이슬람계 소수민족으로, 미얀마는 방글라데시 불법 이민자들이라는 이유로 ‘공식 소수민족’에서 배제하고 국적 취득은 물론 교육 등 각종 기본권도 제한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달 9일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등의 국경 검문소가 무장 괴한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로힝야족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다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유엔은 난민 수가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진압과정에서 1,200여 채의 민가가 불에 탔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난민 수천명 방글라데시로 탈출
유엔 비난에 정부 “증거 대라”
‘외면’ 아웅산 수치에 비판 고조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삶의 터전을 잃은 수천명의 난민들은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탈출러시를 이루고 있다. 방글라데시 경찰은 현재까지 국경을 넘은 난민이 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23일 미얀마 대사를 불러 정식으로 항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인근 무슬림 국가들도 이번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얀마 정부는 민간인 학살 내지 인종청소를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저 타이 미얀마 대통령실 대변인은 “유엔 지역 책임자의 언급은 주장에 불과하다”며 “분명한 증거에 기반을 둔 발언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군부와 정부는 민가 방화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무장세력의 소행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부가 현장접근조차 불허하고 있다며 미얀마 정부에 정확한 정보제공을 요청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HRW 관계자들은 로힝야족 거주지의 대규모 방화 흔적이 선명한 위성사진 등의 자료를 제시하며 “미얀마 정부가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는 특히 노벨상 평화상 수상자이며 사실상의 미얀마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겸 외교장관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군사작전이 시작된 지 6주가 지났는데도 실제 수치는 언론을 피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서도 “법치에 근거해 군사작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원론적 해명만 내놓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지들은 수치를 향해 “인권수호 명성을 지키려면 로힝야 문제에 개입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NYT는 최근 사설에서 수치가 로힝야족을 경멸조의 ‘벵갈인’이라고 부르며 이방인 취급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엔 차원의 조사를 허용하라”고 주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치와 그를 민주주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던 서방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논평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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