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北 인권결의안 초안 회람… 최고 권력집단 포함 회부 추진
한국 작성 참여… 北 반발 가능성, 고위급 회담 백지화 등 파장 예상
유엔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사상 처음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북한 최고 권력집단을 국제 형사법정에 세우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이 담긴 유엔총회 결의안 초안 작성에는 한국도 참여하고 있어, 북한이 이를 빌미로 강력 반발할 경우 해빙무드에 들어선 남북 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다만 북한의 대남 접근이 본질적 변화가 아니라, 국제사회 압박을 우회하려는 전술일 수 있는 만큼 남북 관계의 기본 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유엔은 8일 ‘북한 내 반(反) 인권행위 관련자를 국제형사기구에 회부한다’는 내용으로 유럽연합(EU)이 작성한 북한 인권결의안 초안을 비공개로 회람했다. 우리 유엔 대표부 관계자도 “한국을 포함해 결의안을 공동 제의할 50여개국에 회람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행위 실태와 김 제1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를 반인권 혐의로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권고한 올해 2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와 같은 맥락의 내용이 초안에 담겼다”고 덧붙였다.
북한 지도부를 반인권 혐의로 국제법정에 세우는 내용이 북한 인권 결의안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일부 보도와 달리, 김 제1위원장 등 최고 지도부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의 사법처리를 추진하는 문구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마련한 인권결의안은 아직 초안에 불과하다. 최종안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국제 법정에 세우는 방안이 철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강도 높은 COI 보고서 수준과 국제사회의 비판적 분위기는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안보리에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등 구속력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면 북한은 안보리에서 핵과 미사일에 더해 ‘인권 이슈’까지 ‘삼면 압박’을 받게 된다. 김 제1위원장을 법정에 세우기 위한 물리적 조치 등 구속력은 당연히 없지만, 국제사회의 고립은 더욱 심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권문제를 한미 양국의 ‘정권 붕괴’음모라고 주장해온 만큼 2차 고위급회담 등 합의된 대화 일정을 전면 백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남북 경색 국면의 실타래를 푸는 계기는 차기 정부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결의안이 국제 사회의 예정 수순에 맞춰 진행된 만큼 남북ㆍ북미 관계의 기존 틀을 깨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의 한 소식통은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고위급 사절단을 보낸 것과 관련, “유엔 총회에 15년 만에 외무상을 보낸 뒤에야 국제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실감한 북한이 남한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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