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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 12년… 아내는 저보다 친정이 우선이에요”

입력
2018.04.02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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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가 있는 서울 근처까지 올 때도

아내는 처형들만 만나고 내려가

의논할 일 생기면 장모님 먼저 찾아

딸아이는 돌봐주는 처제 잘 따르고

아내조차 아이 생활 얘기 안 해줘

만나면 말 안통한다며 피해 다녀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아내와 주말부부로 산 지 12년이 됐습니다. 2004년 결혼해 3년 정도는 함께 살았는데 직장 문제로 떨어져 지내게 됐어요. 올해로 11세인 딸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저보다 친정 가족들이 우선입니다. 아내는 함께 살지 않는 제게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아이에게서 제 존재도 옅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아내와의 관계에서 트러블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아내는 대구에서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직업 특성 상 3교대를 해야 해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제가 주중에 집에 와서 아이를 돌봐줍니다. 아내는 네 자매인데 자매끼리 매우 돈독합니다. 문제는 네 자매 사이에 제가 낄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명절 때 아내는 아이와 함께 친정에 가서 며칠씩 함께 보냅니다. 장모님과 자매들, 제 딸과 조카들은 만나면 시끌시끌합니다. 자매들은 의논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장모님부터 찾고요. 처가 가족들이 일부러 저를 배척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여자들만 모인 자리에 남자가 대화를 지속하기는 힘들더라고요. 장인어른은 내성적이고 술도 전혀 못 드셔서 저와 몇 마디 이야기 나누시다 방으로 가서 혼자 TV를 보세요. 그래서 이제 저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인사만 드리고 집으로 옵니다. 손위 동서 형님도 인사만 드리고 본가로 돌아갑니다.

평소 함께 생활하는 부부라면 남편이 쾌재를 부를 수도 있지만, 저희는 주말부부입니다. 저도 아내와 딸이 보고 싶어 대구까지 가는 거고, 평소에 딸에게 못 해준 것들을 연휴 동안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자매들이 1년에 두 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건데 제가 이해를 못 한다고 합니다. 속이 좁고 남자답게 행동하지 못한다고요. 심지어는 아내가 대구에서 서울 근처까지 올 때에도 절 만나지 않습니다. 처형 두 분이 경기도에 삽니다. 아내는 경기 고양시까지 와서 자매들과 여행을 가면서 서울에 있는 제게는 들리지 않아요. 제가 매주 대구에 내려가니 볼 수 있는데, 왜 가끔 보는 언니들과 만남을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합니다. 옛날만큼 서로 챙겨주는 것 없이 사는 것 같다고 하니 부부들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정으로 살고 생활로 사는 거라고 합니다.

저에 대한 애정이 줄어든 만큼 외동인 딸 아이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매우 과합니다. 아직도 밥과 반찬을 떠먹일 정도예요. 이러한 관계 설정이 저와 딸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아 더욱 걱정이 됩니다. 이번 설날에 아내는 매번 그렇듯이 친정에서 바로 출근을 했어요. 제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 잠시 잠들었는데, 아이가 그 사이에 처제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아빠가 잠만 자서 심심하다고요. 그런데 처제가 “아빠 깨워봐. 안 깨고 피곤하다고 화내? 아빠는 잘 거면서 왜 널 데려갔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화내면 당당하게 할 말하고 외갓집으로 와”라고 답장을 했습니다. 이모가 아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아이가 절 어떻게 생각할까요?

일이 바쁜 아내는 지금 아이를 돌봐주는 처제에게 한 없이 관대합니다. 아이도 처제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아요. 저는 주말에만 만나니 주중 상황도 모르고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줍니다. 주말에 아빠 노릇을 하려 하니 딸은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하다며 절 피하고 처제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요.

주말부부를 청산해야겠다고 생각해봤어요. 제가 작은 직장이라도 구해 대구로 가든 아내가 서울로 올라오든 부부가 함께 살아야겠다고 하니 아내는 싫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외벌이로 팍팍하게 살기도 싫고, 연고 없는 서울에서 살기도 싫다고 합니다. 가족의 순위를 매겨보라고 하면 아이와 제가 우선순위가 아니라 친정 가족과 같은 순위라고 합니다.

이혼도 고려해 봤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처제가 아이에게 저를 어떻게 말할지 두렵습니다. 영영 아이를 잃는다는 각오로 이혼을 하면 할 것도 같지만 아이가 눈에 밟힙니다. 아내 말처럼 제가 더 참고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행복할까요? 이혼은 하나의 방법이 되긴 할까요? 12년 동안 천천히 쌓여 온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민석(가명ㆍ41세ㆍ회사원)

#A

부부 정서적 거리 멀어진데다

친정,딸만 가족 개념에 포함

아내, 가족이기주의 모습 보여줘

아내,딸과 거리 좁히는 게 우선

“사랑한다” “보고싶다” “여행가자”

애정 담은 구체적 표현,요구부터

민석씨의 사연을 읽으며 민석씨가 보내는 호소가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민석씨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섭섭함, 그리고 외로움이 전해져 마음이 아픕니다. 민석씨가 아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괴로움은 민석씨가 속이 좁아서라거나 남자답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라는 말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족으로부터 얻을 거라 기대하는 따뜻함과 위로를 현재 민석씨가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민석씨가 가족을 아끼는 마음도 알 수 있었어요. 민석씨의 마음 속에는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이 자리잡고 있어요.

민석씨, 사람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때 충족하고 싶어하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애착 관계’가 되길 바라는 거지요. 친구 사이에는 아무리 친하고 가깝다고 해도 애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가장 대표적인 애착 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 간에도 이러한 정도의 애착을 원해요. 결혼식을 올리든, 혼인신고를 하든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는 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서로가 가깝다는 걸 어떻게 느낄까요? 자식이라면, 어떤 상황에도 부모가 나를 믿어주고 아껴주길 바랄 거예요. 부부라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이번 달 카드 값,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 나이가 들면 흰 머리가 생겼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또 알고 싶어하는 게 부부예요. 함께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는 거예요. 인생에는 기쁨과 행복도 있지만 슬픔과 좌절도 있어요. 마음의 고통을 나누기도 하지만 함께 앉아 TV를 보면서 깔깔 거리기도 해요.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겪었던 상처는 물론, 앞으로 함께 걸어갈 미래도 논의하고 싶어합니다. 자녀가 있다면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포함되고요. 민석씨가 현재 아내에게 요구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민석씨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부부라면, 가족이라면 당연히 충족되길 바라는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관계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민석씨 부부 사이에는 ‘거리감’이라는 문제가 생겼어요. 물리적인 거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서적인 거리가 멀어요. 민석씨는 아내에게 “가까워지고 싶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요. 이런저런 제안도 해 봤지만 아내는 여전히 민석씨를 섭섭하게 합니다. 아내가 대구에서 경기도까지 오면서도 서울에 있는 남편을 보러 가지 않은 것은 정말 섭섭하게 느낄 만한 일이에요. 그래서 마음이 공허하고, 정서적 안정감이 들지 않아요. 딸 아이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 우리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은 이런 거예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 집에 함께 간 딸 아이는 아빠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이모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가족 전체로 본다면 감정적 밀착도가 현저히 떨어져 있어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더 가깝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에 애를 씁니다. 민석씨의 아내는 유독 친정 가족들에게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가장 가까워야 하는 관계에 있는 남편에게는 그런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지 않아요. 자신의 친정 가족과 딸만을 가족 개념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친정 가족 일에는 열과 성을 다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바쁜 와중에 시간을 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 개념 안에서는 모든 이득과 배려, 보호의 의무를 다 하고 있어요. 가족이기주의의 한 모습이에요. 물론 기존에 익숙한 것들을 유지하면서 안정감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익숙한 걸 바꾸는 걸 어려워합니다. 민석씨 아내에게 친정은 몇 십 년을 함께 한 익숙한 사이인 반면, 민석씨와는 오히려 떨어져 사는 데 익숙해진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두 분은 신혼 부부가 아니라 결혼 15년 차 부부입니다. 서로에게 가족이 되기 위해 방법을 찾아봐야 해요.

민석씨는 이혼도 고려해 봤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 너무 힘든 상황을 전환하고 싶어 이혼을 고민해본 게 아닐까요? 게다가 사랑하는 딸도 눈에 밟히고요. 민석씨가 결혼을 할 때 어머니의 시집살이 요구를 거절한 건 아내를 위해 애썼다는 뜻이에요. 아내를 사랑하고, 그래서 아내를 보호해줘야 하고, 결국은 아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였지요.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이유로 아내의 결정에 따라주고 있어요.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물론 민석씨 가족이 다시 모여 사는 겁니다. 가족은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관계니까요. 오랜 결혼 생활 중 대부분을 주말 부부로 보내는 것을 저는 권하지 않아요.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부부는 한 이불을 덮는 사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가깝고 밀착된 관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내 분이 친정 가족들이 아닌 민석씨와 딸을 자신의 가족과 가정이라고 받아들여야 해요.

하지만 이미 멀어져 있는 가족들이 가까워지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아요. 이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우선 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자존심을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애를 써주면 좋아해요. 주중에 볼 수 없는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내주세요. ‘사랑한다’ 표현해주세요. 이모티콘도 사용하고, 아이스크림 쿠폰도 보내주면서 가까운 관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엄마랑 이모랑 같이 먹어”라고 말 한 마디 더해 준다면 더 좋을 거예요. 주말에 만나면 가까운 마트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문구류를 같이 보는 것도 좋아요. 아내가 근무시간이라면 민석씨가 아이를 더 적극적으로 돌봐주세요.

아내에게도 분명한 요구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단 강요나 압박이 아니라 부드러운 방법이어야 합니다. 주말에 대구에 가기 전 미리 “이번 주말에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이야기 해 보세요. 아내가 귀찮다며 집에 있자고 해도, “꼭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해 야해요. 차를 타고 나들이 겸 밖으로 나가서 사진도 찍고요. 그래야 민석씨도 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서울에서 외로울 때 사랑하는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애정을 담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요구가 필요합니다. “평소에도 보고 싶다, 기억이 쌓여야 앞으로도 우리가 할 얘기가 많아 질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곳이라도 함께 여행을 가자”라고 민석씨의 마음을 표현하세요.

가까워지는 과정이 없이 바로 한 집에 살게 되면 아내는 답답하게 느낄지도 몰라요. 일단은 가까워지려는 노력부터 해 봐야 합니다. 민석씨도 어색함을 이겨내야 해요. 아내의 친정 가족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아낌없이 말해보세요. 민석씨가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가족들 사이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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