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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바람직한, 팬덤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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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바람직한, 팬덤의 '배신'

입력
2016.06.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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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은 아이돌 출신 배우 중 가장 촉망 받는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성폭행 논란으로 연예계 생활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유천은 아이돌 출신 배우 중 가장 촉망 받는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성폭행 논란으로 연예계 생활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단 대장 말을 들어봐야지. 아직은 언론 보도에 대해서 뭐라 말 못 하겠네.” 5년 전 국내 연예계가 뒤집혔다. 미혼으로만 알던 가수 서태지의 이혼 보도가 잇달았다. 1990년대 문화 대통령을 ‘대장’이라 부르며 삶의 나침반처럼 여기던 지인은 쏟아지는 뉴스에 좀 심드렁했다. 아직 대장이 뭐라 언급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첫 보도가 나온 뒤 한참이 지나 서태지가 결혼과 이혼을 언급했을 때 어느 팬은 신과 같던 존재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됐다는 점에 감사했다. 서태지의 결혼 보도에 몸져누울 정도로 충격에 빠졌으나 이내 “그도 남자이고, 인간인데 당연한 일 아니냐”며 그 팬은 방패를 세웠다. 하늘에 박혀 있는 큰 별처럼 여겨지던 서태지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 선언’을 했다며 오히려 감읍한 것이다. 결혼과 이혼이 무슨 죄는 아니겠으나 서태지의 사생활을 둘러싼 한바탕 난장을 관통하면서 어떤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팬덤을 목도했다.

2009년 그룹 동방신기가 쪼개질 때도 비슷한 현상과 마주했다. 동방신기의 멤버 박유천과 김재중, 김준수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불공정 계약을 문제 삼으며 탈퇴를 선언하자 그들의 팬들은 거대 기획사에 맞서 싸우는 취지에 공감하며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었다. 동방신기를 박차고 나온 세 사람이 2011년 그룹 JYJ로 새 출발을 할 때 팬들은 신문 광고와 지하철 광고 등으로 응원했다. 팬들의 뜨거운 지지는 국내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계약 관행까지 바꿨다. 팬과 아이돌 그룹이 함께 성장한,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JYJ의 멤버 박유천 성폭행 피소로 연예계가 뜨겁다. 사건이 벌어진 곳이라고 고소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장소에 대한 고약한 분석이 곁들여지며 호사가의 입을 자극하고 있다. 박유천은 무고를 주장하나 그는 거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익근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기간에 성을 상품화한 유흥업소를 찾았다. 팬들의 사랑으로 돈과 명예를 얻은 아이돌 멤버로서 비판 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박유천의 이름이 불명예스러운 단어들과 함께 문장을 이루며 보도되기 시작할 때 완고한 팬덤을 새삼 떠올렸다. 열성 팬들이 자기의 별을 어떻게 지켜 내려 할까 궁금했다. 현실 부정 또는 긍정적인 해석을 통한 수긍으로 박유천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박유천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팬덤 철회’를 선언한 팬들이 바로 나타났다. JYJ 온라인 팬클럽 중 하나인 디시 인사이드 JYJ 갤러리는 지난 17일 ‘최근 박유천 사건에 대한 DC JYJ 갤러리의 입장 표명’이라는 글을 올리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박유천을 지탄한다”며 “(박유천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나 콘텐츠를 철저히 배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공정 행위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그들의 신념이 옳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JYJ를 응원해 왔는데 “박유천이 성을 상품화하는 곳에 출입한 이상, 부당함을 타파하기 위해 싸워온 팬덤이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유에서다.

2013년 배우 박시후가 성폭행 논란에 휘말렸을 때 한 대만 친구는 속보를 챙기며 혹시 보도되지 않은 뒷이야기가 없는 지 동그란 눈으로 묻곤 했다. 대만의 한류 팬들 사이에선 최고의 화제거리라며 한국에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박시후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당시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박유천의 보도를 접하고 있을 대만 친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궁금증이 부끄러움과 함께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박유천 사건은 국내 대중문화의 건강한 면을 발견케 했다. 스타와 언제든 결별할 수 있는 이성적인 팬덤은 국내 팬 문화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때 사회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비판하는 아이돌 스타를 ‘개념돌’(개념 있는 아이돌이란 의미)이라고 했다. 이제는 스타의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는 팬덤인 ‘개념덤’의 시대가 열린 것 아닐까.

라제기 엔터테인먼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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