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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명씨들이 이루는 역사의 시간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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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명씨들이 이루는 역사의 시간을 생각하며

입력
2015.12.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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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산에 다닐 때는 새해 아침을 산에서 맞기도 했다. 새 달력의 첫날, 차고 상쾌한 아침 산의 공기 속에서 하늘 한쪽을 물들이며 올라오는 해를 바라보면 ‘새해’라는 말이 새삼 벅차게 느껴지곤 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새해를 맞으리라.

이즈음은 가끔 친구들과 인왕산을 찾는다. 잘 단장된 인왕산 성곽길은 가벼운 산책의 느낌도 주지만, 정상 쪽은 꽤 가팔라서 잠시 본격적인 등산 기분도 난다. 해발 338m의 정상에 오르면 북악산을 기점으로 청와대, 경복궁을 거쳐 세종로로 이어지는 선이 반듯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선을 더 이으면 한강이다. 북적이는 도심을 차로, 전철로 오갈 때는 보이지 않던 선이고 길이다. 경복궁, 비원, 덕수궁, 북촌 한옥이 이루는 차분하고 정갈한 스카이라인 덕분인지 남산을 등에 진 고층빌딩들도 나름의 조화 안에 들어와 있다. 억압적인 느낌이 없다. 조망의 높이도 적당해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서울 시내가 한눈에 감싸인다. 서울 생활이 30년이 넘었지만 정겹다는 느낌은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지금도 광화문 사거리에 서 있으면 낯설고 남의 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다. 인왕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내의 정경에는 메트로폴리스의 잡답과 위압이 얼마간 가셔 있다.

1916년생인 선친은 일제강점기에 중동고보를 나오셨다.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옆으로 수송동이 있고, 거기 당신의 모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의 서울 거리를 한참 헤맸지만 동상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잘못 내려 종로2가 쪽에서 찾았던 탓이다. 길을 물어볼 주변머리도 없었던 나는 그날 그냥 기숙사로 돌아오고 말았다. 서울에서 갓 생활을 시작한 때의 이야기다. 선친은 잠자리에서 다리를 심하게 떠셨다. 그게 고문 후유증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선친의 정강이뼈는 양쪽이 다 뭉개져 있었다. 보도연맹 학살 때는 지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사복 입은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선친은 평생 이렇다 할 생업 없이 무력하게 지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돌아가셨다. 아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도, 당신의 손자 손녀도 못 보셨다. 이제는 서울이 고향인 친구들보다 내가 서울 시내 지리에 더 밝은 줄도 모르실 테다. 사실 이런 일은 너무 흔하며, 이렇게 드러내 말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자유와 평등의 인간 문명, 비판적 인간 이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냉정하고도 격정적인 변론서인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은 나치라는 전체주의의 야만과 광풍이 세상을 휩쓸던 암울한 시절에 구상되고 쓰였다.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에 맞서 ‘점진적 사회공학’을 옹호하는 가운데 포퍼는 예언과 역사적 필연의 법칙에 인간을 굴복시키는 ‘역사주의(historicism)’에서 전체주의의 철학적 뿌리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격렬하고 감동적인 싸움을 전개한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언제까지라도 존속할 것이라고 그렇게 순진하게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 끈질긴 냉소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 긴 저작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역사는 도대체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당연히 그는 역사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목적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결단과 선택일 뿐이다. 우리가 ‘역사의 심판’이나 ‘역사의 보상’과 같은 기만적 어휘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의 정당성은 그 일 자체에서 온다. 그것은 나 자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명(無名)과 익명의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좌절과 무상(無償)의 희망을 믿는 일이다. 포퍼는 말한다. “잊혀진 사람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삶, 그들의 슬픔과 기쁨, 그들의 수난과 죽음,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인간 경험의 참된 내용이다.” 있다면, 이것이 역사일 테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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