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장서 7발 총격 후 자살
함께 훈련받던 4명 사상
軍 고질적 안전불감증 재연
예비군이 훈련 도중 총기를 난사해 3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육군은 올해부터 강한 예비군을 표방하며 훈련강도를 높이는데 박차를 가했지만 관리 소홀로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군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에 대한 비난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육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10시37분쯤 서울 내곡동에 있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송파ㆍ강동 동원예비군 훈련장에서 예비군 최모(23) 씨가 총기를 난사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5m 사격훈련이 시작되자 ‘엎드려 쏴’ 자세로 1발을 쏜 최씨는 갑자기 일어나 돌아서서 뒤에 서 있던 부사수를 먼저 쐈고, 사격 중이던 사수 3명에게 차례로 모두 7발을 난사했다. 이어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돌려 자살했다. 최씨의 K-2소총 탄창에는 총 10발 중에 1발이 남아있었다.
총기난사범 최씨는 육군 5사단에서 복무하고 2013년 10월 전역한 B급 관심병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B급’은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대상이다.
최씨의 전투복 하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이 같은 심경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최씨는 13줄짜리 두 장 분량의 메모지에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리고 싶다. GOP (근무)때 기회를 놓친 게 후회된다. 내일 사격을 한다. 모든 상황이 싫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군 당국은 전날 입소 후 동료 예비군들과 최씨가 갈등을 빚었는지도 조사 중이다.
총기 난사로 예비군 박모(24) 씨가 두개골 관통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치료 도중 숨졌다. 탄알이 목을 관통해 상태가 위독했던 윤모(24)씨도 총상을 입은 지 11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각각 왼쪽 턱뼈와 좌측 어깨에 총을 맞은 황모(22), 안모(25) 씨는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들 피해자는 모두 최씨와 같은 중대에 속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예비군이 훈련 중에 자살하거나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총기를 난사해 다수가 숨진 것은 전례가 없다.
현장에서 대위 3명이 사격 통제
거치대 잠금 장치 확인도 안해
육군, 예비군 훈련 강도 높이고
사전 준비는 부족... 허점 노출
가해자 전투복 하의 주머니서
"다 죽이고 싶다..." 유서 발견
사고 후 육군의 허술한 관리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현장에는 대위 3명이 사격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사격하는 20명의 예비군 뒤에는 불과 6명의 현역병 조교가 배치됐다. 때문에 최씨가 돌발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적절하게 제지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육군은 “사격 안전규정에는 ‘통제관과 조교를 배치한다’고만 돼 있을 뿐 적절한 감독 인원이 얼마인지는 부대장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동원부대인 52사단의 가용인원은 50명 정도로, 그나마 행정업무와 지원인력을 제외하면 예비군 훈련에 투입할 수 있는 현역 장병은 그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방 당국 관계자는 “관리 감독하는 인원이 워낙 적었던 데다 병사들이 예비군들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이상행동을 보여도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격장에서는 545명의 예비군이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총구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도록 총을 걸어놓는 안전고리의 관리도 엉망이었다. 가해자 최씨의 경우는 물론이고 나머지 19개 사로(射路)의 안전고리 대부분이 풀려있거나 고장 나 있어 사수가 마음만 먹으면 총을 뺄 수 있는 것으로 현장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육군은 “안전고리 관리도 규정이 따로 없고 확인하는 것은 현장 조교의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육군이 예비군훈련의 강도를 무리하게 높이다가 이번 참사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요환 참모총장 주도로 올해부터 ‘실전적 교육훈련과 현역에 못지 않은 정예 예비군 육성’을 강조하며 의욕적으로 밀어붙였지만 사전준비 부족과 당사자인 예비군들의 공감대 미비로 급기야 문제가 터졌다는 것이다. 육군은 예비군훈련 입소시간에서 단 1분이라도 지각하면 가차없이 불참 처리하고, 정해진 훈련과제를 먼저 달성하면 조기퇴소를 허용하는 등 예비군간 경쟁을 높이고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예비군들의 스트레스만 가중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는 반론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예비군의 대다수인 대학생들은 동원훈련을 면제받는 상황에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도중 국방부로 복귀해 상황을 보고받았다. 한 장관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훈련 중에 불의의 사고로 희생당한 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부상자들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해외출장 중인 김 총장은 필리핀에 이어 중국을 방문하려다 일정을 사흘 앞당겨 14일 귀국할 예정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14일 오전 당정협의를 열어 총기 난사 사건의 현황을 보고받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키로 했다. 또한 예비군 훈련장의 실탄 지급을 비롯한 총기관리 실태 전반과 안전조치 여부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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