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공정위 강화 공약
“인력 충원 없으면 업무 과부하
비리 교묘해 적발 어려워” 토로
과거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이 12년 만에 부활할 것이란 예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공정위 권한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작 공정위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정위에 대기업을 집중 감시하는 조사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공정위 강화를 공약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해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겁니다.
조사국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관련 조사를 전담했던 조직입니다. 1996년 말 탄생 후 2000년대 초까지 대기업을 집중 감시했습니다. 30~40명의 정예 인력이 투입돼 공정위의 ‘중수부’로 불렸지요. 그러나 재계 반발에 2005년 말 간판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조사국 부활을 반겨야 할 공정위 내부 ‘온도’는 영 미지근합니다. 먼저 조사국 부활 카드가 정권 초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는 회의론이 적지 않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초에도 조사국 신설이 추진됐지만, 재계의 반발과 정권의 ‘우클릭’에 결국 무산됐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조사국 부활이 검찰 중수부 폐지 등 사정기관 축소 움직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행보라는 비판이 당시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조사국 신설에 대한 불안감도 큽니다. 공정위 A국장은 “500명 직원이 연 4,000건 이상 사건을 처리하는 상황에서 인력 충원 없이 기존 정원을 재배치하는 식으로 조사국이 생기면 업무에 과부하만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2013년 조사국 부활이 추진될 때도 공정위는 “전체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청와대와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는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공정위 B국장은 “1990년대 후반에는 조사를 나가면 대기업이 ‘우리 계열사를 살리기 위한 내부거래가 왜 위법이냐’며 자신들의 위법을 자진 신고하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아 성과를 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며 “그러나 부당 내부 거래의 초점이 ‘계열사 지원’에서 ‘총수일가 사익 편취’로 이동함에 따라 이젠 수법이 교묘해져 ‘비리’ 적발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공정위가 일부러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란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차기 정부에서 공정위의 위상이 어떻게 변할 지 주목됩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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